[사설] 광장을 옭아매는 여성혐오의 인식론적 프레임을 넘어서

  지난 달 매주 토요일부터 전국의 광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100만을 넘어서 200만, 연령과 계층, 성별이 망라된 시민들이 한 목소리가 되어 박 대통령의 퇴진을 외쳤다. 서로가 시민임을, 우리 모두가 공동체 안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특별한 나날들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 시국에 망가진 공교육의 현장이 요구하는 시험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며 광장으로 나온 청소년들, 평생 새누리당을 지지했지만 그것이 잘못 됐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노인들, 현 정부 하에서 삶과 노동이 더 어려워졌다고 주장하는 농민과 노동자, 실업자들, 그리고 여타의 이유로 모인 각종 단체의 구성원들. 광장에는 그 다양성만큼이나 수많은 깃발들이 휘날렸다. 한 목소리가 되어 대통령의 퇴진을 외치고 있으면서도 저마다의 상황과 처지는 모두 달랐고, 그럼에도 모두가 안고 있는 문제들이 공적 시스템의 붕괴로부터 비롯된다는 분노와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었다. 2016년 말, 대한민국의 광장은 다양성이 공존하면서 공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민주주의 실현의 장으로서 그 역할에 충실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와중에 다시금 생각해봐야 할 문제가 있다. 시시때때로 퇴진 구호에 들러붙는 여성 관련 발언들이 바로 그것이다. 이전 대통령들과 다르게 박 대통령에게는 특히 성별에 대한 부분이 부각되어왔다. 그가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기 때문일 것이다. 문제는 그의 성별이 말해지는 방식이다. 박 대통령의 부정적인 행보는 논리적이며 합당한 메커니즘이 설명되지 않은 채, 너무도 손쉽게 여성혐오적 발언과 연결되어 왔다. 이를테면 박 대통령을 조롱하고 풍자하는 가장 대표적인 수사는 ‘닭’이다. 닭과 연관시키며 대통령을 비난하는 언어를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지만, 그러한 비난의 방식을 선택하고 용인하는 이들은 그것이 가능할 수 있는 인식론적 토대에 대해 눈을 감아버린다. 여성인 박 대통령을 닭과 연결 짓는 과정의 한편에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속담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 오늘날 이 속담이 발화될 때 파생되는 여성혐오의 정서는 속담이 생성되고 구전되던 때보다 더 짙고 노골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최근 발표된 가요인 래퍼 산이의 <나쁜×>이나 DJ DOC의 <수취인분명>에서 등장하는 ‘병신년’ ‘미쓰박’ ‘세뇨리따’ ‘하도 찔러대서 얼굴이 빵빵’과 같은 가사들은, 이런 맥락에서 우리 사회에 인식론적 변화가 필요한 지점을 그대로 노출하고 있다. 신체가 불편한 여성을 속되게 지칭하는 비속어와 발음이 같은 병신년(丙申年)이 장애인과 여성을 타자화하는 언어가 될 수 있다는 점이 잊혀지는 현실. 결혼 여부를 성숙과 미성숙, 어른과 아이를 가르는 잣대로 별 불만 없이 받아드려 왔을 뿐 아니라, 직위가 낮은 여성을 하대하는 의미로 미쓰와 같은 표현들을 자연스럽게 사용해왔던 사회적 무지(無知)와 무감(無感). 여성의 허영과 사치에 유독 눈을 부릅뜨고 분노하는 태도의 만연. 박 대통령에게 향하고 있는 여성혐오적 비난의 언어들이, 그저 조롱과 풍자라는 이유로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일까. 그것이 개인의 정신은 물론 사회 곳곳에 뿌리내려 있는 인식론적 폭력을 응축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민주주의를 위해서 광장에 모인 것이라면 그러한 폭력을 가뿐히 무시하고 성취해낼 어떤 결과가 정말로 민주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는가.
  여러 번의 토요일을 보내는 동안 겨울이 찾아 왔다. 엄혹한 시절을 함께 견디기 위해서 우리는 더 섬세하고 뜨거워져야 한다. 여성 혐오적 발언이 박 대통령이 아닌, 결국 광장 안의 스스로에게 상처를 남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새겨봐야 할 때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20 07:08: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