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고 낮고 쓸쓸한 우리들을 위하여

비교문학비교문화학과 박사과정

박석인

좋아하는 에니메이션 ‘심슨 가족’에는 대학원생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장면이 나온다. 바트가 대학원생을 흉내 내면서 “난 서른살이고, 일년 내내 60만원 벌었다.”라고 장난치자 엄마인 마지가 타이른다. “바트, 대학원생을 놀리지 말거라. 그들은 그냥 인생의 끔찍한 선택을 한 것 뿐이야...” 또 이런 장면도 나온다. 리사가 공원 벤치에서 빵부스러기를 연못에 던지자 어디선가 오리들이 몰려들어 허겁지겁 먹는다. 다시 빵부스러기를 잔디에 뿌리자 마치 허기진 동물들처럼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나타나 허겁지겁 먹는다. 그때 한 사나이가 나타나 “대학원생들은 논문 3000편을 읽기 전까지 먹지마!”라고 소리치며 대학원생들에게 채찍을 때린다.

이런 장면을 보면 대학원신문에서 단골로 다루어지는 대학원생의 애환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닌가보다. 특히 지난 호에서는, 원우발언대의 ‘외롭고 낮고 쓸쓸한 대학원생’과 1면 포커스의 오영진 인문학 협동조합 총괄이사의 인터뷰, 그리고 ‘기업화의 불도저 앞에서’라는 칼럼이 묘하게 겹쳐져 읽혔다. 아마도 내가 기업화의 불도저 앞에 서 있는 외롭고 낮고 쓸쓸한 인문학 대학원생이어서 일 테다.

얼마 전 한 어느 교수님은 요즈음의 대학의 건물들이 후원한 재벌 기업들의 네이밍으로 바뀌는 현상에 대하여 격세지감을 토로했다. 예전의 반反기업정서를 생각하면 대학과 기업, 다른 말로 학문과 자본의 위상변화가 너무도 격심하다는 것이다. 새삼스럽지도 않다. 모든 가치가 자본의 논리에 종속되는 시대이다. 인간의 가치 역시 그 인간의 수입과 지출로 판단되는데 여기에 반론을 제기하는 것은 무식해서 용감하거나 시대착오적인 취급을 받는다. 연구자라는 대학원생의 신분 역시 현재와 미래의 경제적 가치의 효용으로 평가되고, 아마도 그래서 익명의 원우는 외롭고 낮고 쓸쓸했을 것이다.

그러나 외로움과 낮음과 쓸쓸함의 멜랑콜리는 비슷하면서 각기 다른 뉘앙스로 작용한다. 외로움에 대해서는 오영진 이사의 ‘고독하지만 외롭지 않아야 한다’라는 발언이 인상적이다. 연구에 공동체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연구자에게 공동체가 필요한 것이다. 같은 연구를 하는, 같은 학문을 하는, 나아가 같은 학교의 연구자인 우리 대학원생들은 고독할지라도 외롭지는 않아야한다. 개인주의적 연구 풍토는 지도 교수나 학과주임, 더 크게는 대학원 시스템의 책임도 분명하지만 우리 대학원생들 스스로의 개인주의도 한 몫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융합과 화합과 연대를 외치지만, 우리는 다른 연구자들에게 과연 얼마나 말을 걸었고 얼마나 열려있었는지 자문해 볼 일이다.

낮음과 쓸쓸함은 ‘인문학의 위기’와 연관된다. 이것도 이제는 관용어가 되어버렸다. 인문학의 위기는 ‘인문’의 위기보다는 ‘학’의 위기이며 오영진 이사의 말대로 대학 전체의 위기인 것이다. 학문의 고고함을 주장하는 사이에 시대는 너무 빨리 변해버렸다. 우리 연구자들은 일반 대중에게서 ‘지적 허영’을 추구하는 독단적이고 재미없고 쓸모없는 존재 취급을 은연중에 받고 있다. 때문에 우리는 이해받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하며, 그래서 쓸쓸하다. 그러나 생활과 연결되지 못하는 학문 자체에 문제도 있다. 세상은 모두 ‘먹고사니즘’을 말하고 있는데 우리는 도스토예프스키나 데리다나 내재적 발전론을 연구하고 있으니 말이다. 반면 인문학협동조합이 만들어낸 <게임비평>, <테크노페미니즘>은 모두 엄청난 반응을 이끌어 냈다고 한다. 그런데 비평과 페미니즘은 우리 인문학 고유의 문제들이 아닌가? 단지 비평이라는 형식과 게임이라는 내용을 융합한 것일 뿐이다. ‘먹고사니즘’ 속에는 여전히 인문학이 끼어들 여지가 충분하다는 뻔한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오영진 이사의 말대로 학문은 내용이 아니라 형식에 불과하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형식에 익숙한 우리 연구자들은 새로운 내용을 분석하고 연구하고 일반 대중들에게 다가가기 위에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반성해야한다,

한 술자리에서 IT업계의 사람들을 만난 적이 있었다. 다른 업계에 비해 이직이 잦고 은퇴 시기가 빠른 IT세계를 이야기 하며 그들은 대학원에 있는 나를 반쯤은 한심해하며 반쯤은 부러워했다. 놀라웠던 것은 그들이 갑자기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가지고 토론을 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 책이 번역 출판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시기였다. 그들은 당연히 내가 그 책을 읽었을 것이라고 가정하고 내 의견을 물었지만 부끄럽게도 나는 그때 유발 하라리의 이름을 처음 들었다. 당시 나는 니체와 최장집을 읽고 있었다. 당시에 나는 사람들이 어떤 것에 관심 있는지 별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자본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계 속에서 순수 학문은 외롭고 낮고 쓸쓸하다. 하지만 그 쓸쓸함을 극복하려는 논의가 우리 내부에서 얼마나 활발한지는 의문이다. 세상과 조응하지 못하는 학문은 무용하다. 문학은 무용하기 때문에 오히려 억압을 드러내어 준다는 김현의 말을 성서처럼 믿었을 때도 있었다. 그런데 아닌 것 같다. 무용한 것은 그저 무용한 것이다. 우리는 학문이라는 우리의 자산을 연구할 뿐 아니라 그것을 서비스할 책임도 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 서비스의 형태는 온전히 수요자의 기호에 맞추어져야 하고 우리는 연구자이면서 동시에 기획자나 디자이너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함께’일 때만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