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에 출제될 문제와 유사한 형식의 기출문제를 의미하는 ‘족보’. 현재 족보는 출제 경향과 시험 유형을 파악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을 넘어 단기간에 좋은 성적을 받도록 하는 편법으로 사용된다. 이에 족보 유무로 학생들의 성적이 좌우되고, 수업의 본질이 흐려지는 등의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

정보력으로 결정되는 성적
족보를 구할 창구가 없는 학생들은 특정 학생만 족보를 구하는 상황이 불공평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특히 자신의 본전공이 아닌 다른 과의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대부분 족보의 혜택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식품자원경제학을 이중전공하는 10학번 A 씨는 “이중전공생이기에 족보를 구하기 힘들었던 적이 많았다”며 “어떤 시험은 문제가 족보와 약 70% 유사해 족보가 없는 사람들은 불리했다”고 말했다.

한 수업에서는 시험 문제가 지난 기출문제와 완전히 같게 출제되는 경우도 있었다. 작년 1학기 한 이공계 전공시험 기말고사는 과거 출제됐던 시험 문제와 오타까지 동일하게 출제됐다. 고파스에 이를 지적하는 글을 올린 한 학생은 “예전 학기 기말고사 문제가 구체적인 숫자마저 바뀌지 않고 똑같이 출제됐다”며 “족보를 가진 일부 학생들은 예전 문제를 답과 함께 복사해서 공유했고 오픈북 시험임을 이용해 답안을 그대로 베꼈다”고 말했다.

수업 분위기 흐려지기도
족보 자체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도 있다. 컴퓨터학과 11학번 B 씨는 “족보가 존재하고 학생들 사이에서 공유되는 것은 굉장히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학생들은 학점을 받아야 하는 현실적 상황에 영향을 받는다”며 “진정성 있는 공부를 하고 싶어도 족보가 돌아다니면 결국 정석대로 공부할 수 없게 된다”고 말했다.

기출문제와 시험문제가 지나치게 유사할 경우에는 수업 분위기에까지 악영향을 주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학생은 “족보가 있으면 이를 구하지 못하는 학생은 불공평을 감수해야 하고, 족보가 있다는 사실에 수업 분위기도 산만해질 것 같다”고 말했다. 안영옥(문과대 서어서문학과) 교수 역시 “족보가 시험 문제와 유사하면 학생들은 수업에 불성실하게 될 것”이라며 “족보로 인해 수업 자체의 의미가 약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기출 공개・평가방식 다양화 필요해
족보로 인한 부작용을 막기 위해 일부 교수는 기출문제를 공개하거나 평가 방식을 다양화하고 있다. 임송수(생명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는 “족보를 구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겪는 어려움을 안다”며 “보유하고 있는 모든 기출문제를 전체 학생에게 공개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실적 한계로 전면 시행은 어렵지만, 지필고사 미응시자나 재시험을 원하는 학생에 한해 구술시험을 치르는 경우도 있다. 김영욱(이과대 수학과) 교수는 “구술시험은 지필시험보다 정확하게 학생의 실력을 측정하기 용이하고 족보를 사라지게 할 수 있지만, 시험 시간이 부족하고 기준을 명확히 세우기 어려운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평가 방식과 문제 형식을 다양화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안영옥 교수는 “지필 시험만으로 평가하기보다는 참여, 토론, 발표 등으로 평가 방식을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동승(공과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담당 교수가 시험 문제를 계속 바꾸고, 외워서 답할 수 있는 형식의 문제를 피하는 등 족보 문제를 해결하도록 신경써야 한다”고 말했다.

글 | 박선영, 정다인 기자  news@kukey.com
일러스트 | 김예진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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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18 20:1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