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에 관한 (지극히 현실적인) 여러가지 사실들
                                  

                                                                                        글 송승엽 기자ㅣ 사진 점프볼 제공
                                                                             http://blog.naver.com/sportsku/220592956337


(본 칼럼은 필자의 객관적인 관점에서 서술되었습니다)



만약 당신이 스포츠 경기, 예를 들면 농구를 관람하러 간다고 하자. 경기장 안에 들어서면서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전광판에 적힌 홈과 어웨이 팀 이름과 남은 시간, 그리고 스타팅 라인업일 것이다. 홈 팀이 준비한 각종 이벤트가 끝난 뒤 경기를 시작하고 나서는 경기장 안의 선수들과 플레이를 쫓아가기에 여념이 없다.



XII : 농구 경기에서 엔트리에 등록될 수 있는 선수의 숫자, 12명
부제 : 코트 밖의 무한 경쟁,벤치


잠시 시선을 코트 밖으로 돌려보자. 경기 도중 갑자기 골대 부저에 빨간불이 들어오고 선수들이 뛰어 들어간다. 선수들이 잔뜩 모여있는 이곳은 어디일까? 바로 벤치다. 벤치는 생각보다 많은 역할을 한다. 경기장에서 뛰다가 지친 선수들이 앉아서 휴식을 취할 의자가 있고 교체 선수들이 경기에 투입되기 전 웜업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감독이 경기에 사용할 작전을 강구하는 곳이기도 하다.

벤치를 흔히들 선수단의 보금자리라고 이야기한다. 모두가 정신없이 빠르게 움직이는 코트 안에서 유일하게 시간이 멈춘듯 고요한.. 그러나 선수들에게 그곳은 관중석보다 뜨겁고 상대 선수들의 눈빛보다도 차가운 공간이다. 엔트리에 포함된 선수들과 등록되지 못한 선수들이 함께 앉아있는 벤치에는 특유의 묘한 기류가 흐른다.

선수의 선발권은 전적으로 감독에게 있다. 경기에 나간 선수들 외에도 나갈 혹은 나가지 못할 이들이 감독에게 선택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기다림이다. 그리고 너무나 당연하게도 관중에게 기억되는 이들은 언제나 감독의 선택을 받는다. 더욱 슬픈것은 모두에게 기회가 균등하게 돌아가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경기에 나서기 위해서는 내가 경기에 나서지 못하는 희생을 감수해야 하거나 아니면 그 반대여야 한다. 그래서 오늘도 내일도 경기장 밖의 경쟁은 항상 치열하다. ‘선수라면 경기장에서 증명해야 한다’가 슬프게 들리는 이유다.


L : 울산 모비스의 유재학 감독이 한 시즌에 사용하는 패턴 개수, 약 50개
부제 : 득점 하나에도 의미가 있다. 패턴


앞서 말한 것들만 보면 벤치에 대한 이미지가 다소 어두워보일수도 있겠다. 사실은 경기에 대해 가장 뜨거운 토론이 오가고 팀 모두가 승리를 위해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쏟아낼 수 있는 곳이 바로 벤치인데 말이다. 사실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을 통틀어 가장 바쁜 사람은 감독이다. 앞서 언급한 선발권이라던지 팀을 훈련 및 운용하는 것에 대한 전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만(물론 코치에게 업무를 배분하거나 코치가 특정 포지션을 맡아 훈련을 시키는 곳도 있다. 팀마다 스타일이 각자 다를 수 있으니 일반화하지는 말 것.) 경기에서 선수를 적재적소에 배치하거나 공격 또는 수비를 성공할 수 있는 가장 확률이 높은 곳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 결국 감독 고유의 업무이기 때문.

여기서 말한 ‘수단’을 농구 용어로 말하면 ‘패턴’이라고 읽는다. 쉽게 설명을 하자면, 감독과 선수간에 약속하고 또 그렇게 움직이도록 짜여진 하나의 각본이다. 그러나 꼭 이것대로 움직이는 것이 패턴은 아니다. 예를 들어 길거리 혹은 특정 동호회 농구팀에서는 여느 선수 개인의 아이솔레이션 플레이만으로 경기를 풀어나가는 경우가 있는데 넓게 보면 이것도 하나의 패턴이 될 수 있다. 꼭 여러명의 손길을 거쳐야만 성립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있는 대중적인 패턴이란 포지션별로 자신이 해주어야 하는 역할을 가지고 순서를 정하는 것이다.

사실 예전엔 센터가 무조건 스크린, 득점력이 좋은 가드가 슛하는 방식으로 어느 정도 불변의 법칙이 정해져 있었지만 요즘엔 외곽슛을 쏠 줄 아는 센터가 밖에 나와서 3점을 던지고 가드가 여러번에 걸쳐 스크린을 걸어주는 등 파격적인 요소가 많아졌다. 특히 KBL은 부활한 용병 제도와 장신 포워드들의 출연, 포지션의 파괴 등으로 트렌드의 변화를 많이 겪으면서 전술의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붐이 불기 이전부터 존재했던 모션 오펜스라는 패턴을 생성해낼 수 있는 매개체가 다시금 주목을 받고 있으며 농구에 대한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전술 하나쯤은 쉽게 찾아볼 수 있고 또 설명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 필자가 이번에 열린 농구대잔치 취재를 갔을 때 선수 개인의 팬으로 보이는 분들이 상대 팀의 전술을 달달 꿰고 심지어 교체 멤버 예상까지 해주셔서 깜짝 놀랬던 기억이 있다. 그만큼 선수나 지도자 고유의 영역이였던 패턴이 이제는 조금씩 대중화되고 있다는 말이다. 전술을 고안해야 하는 감독들은 머리가 아프겠지만 농구 팬 입장에선 반가운 일이다.


XXIV : 농구의 공격 제한 시간은 24초
부제 :제한된 시간 안에 풀어나가야 하는 오펜스


선수 입장에서도 감독 입장에서도 24초라는 공격 제한 시간(샷 클락)은 매우 짧다. 지도자들이 패턴을 짜기 어려워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코트를 넘어가는데 빠르면 5초에서 6초 가량. 수비붙으면 7초. 남은 시간은 17초. 여기서 감독이 작전 지시를 하고(혹은 엔드 라인을 나가서 넘어갈 준비를 할 때 작전 지시를 했거나) 리딩을 맡은 선수가 그 지시를 받아서 팀원들에게 하달하고 그대로 움직이는데 3초~4초 가량이 걸린다면 결국 우리에게 남은건 12초에서 13초뿐이다.

패턴이란 것은 결국 효율적이어야 한다. 내가 이것을 실행했을 때 2점 혹은 3점을 반드시 성공시킬 수 있다고 하는 전제조건을 깔고 가야한다는 이야기다. 실패해서 상대에게 점수를 먹고 다시 왕복하는 일이 없어야 함은 물론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13초다. 이 안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필자가 글을 쓸 때 하나의 문장을 타자로 쳐내는데 10초가 채 안 걸린다. 이렇게 혼자서도 충분히 허비하는 시간을 5명이 작전을 수행하면서 서로 나눠가져야 한다. 45도에서 밑으로 내려오는데 2초, 스크린 정확히 받는데 2초. 건너편으로 건너가는데 2초. 계산대로라면 볼을 안 받았을 때도 7초가 남는다. 그럼 이 7초안에 슛을 쏘든지 막히면 다시 빼고 뭘 하든지 해야 한다.

경기를 보다 보면 어느 선수가 공격 시간에 쫓겨 무리하게 아이솔레이션 플레이를 시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혹자는 이기적이라고 할 수 도 있겠지만 농구를 직접 경험하지 않고 하는 이야기다. 경기장안에서 맞는 초 단위의 세계는 입을 바싹 마르게 한다. 여느 사업가가 고안했다는 이 24초룰은 농구라는 종목이 대량의 스코어를 가능케 하는 박진감과 스피디함이 있는 스포츠로 탈바꿈하도록 도와주었다.



M : 얼마 전 김주성이 달성한 KBL 역대 최초의 기록, 1000블록
부제 : 한 골 막고 한 골 더 집어넣으면 이긴다


선수 시절 은사님께 들은 많은 조언 중 유독 깊은 울림을 주는 말이 있었다. “결국 농구란 득점이 중요하다. 상대보다 한 점 더 많으면 이기는 것 아니냐” 까까머리 학생은 그 말을 듣고 득점을 쉽게 올리는 방법을 연구했다. 수비는 나름 열심히 연습했지만 잘 안됐고 결국 그만두기 전까지 내 수비 실력은 나아지지 않았다. 아무튼 그것과는 별개로 수비는 농구에 매우 중요한 요소다. 지금 생각해보면 저 말씀은 결국 득점과 함께 공격을 하나라도 더 막으라는 양립의 뜻이 담긴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한다.

수비를 틀어막은 뒤 공격을 펼쳐나가는 색깔이 강했던 이전에 비해 공격적인 요소를 더욱 강조하고 어떻게든 득점을 많이 내는 지금 농구에 대중이 열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눈이 즐거우니까. 반면 수비는 재미없다. 무미건조하다. 잘하면 공격권 뺏고 못하면 파울 혹은 몸싸움인데 어디서 즐거움의 포인트를 찾아야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것이다.
      
허나 입장을 바꿔보면 다르다. 감독과 선수에게 수비란 한 골을 막아내고 한 골을 집어넣어서 이긴다는 원초적인 본질에 가장 근접한 것이다. 실제로 유로 2005에서 독일 대표팀을 꺾고 우승을 차지한 그리스 대표팀의 경우 공격도 뛰어나지만 팀 전원이 헷지(2대2 수비에서 볼 핸들러를 견제하는 수비법)나 새깅 디펜스(일부러 한두 발짝 떨어져서 선수의 돌파를 견제하는 방법)같이 기본적인 수비 스킬을 숙지하고 있었으므로 다양한 디펜스를 펼치면서 상대팀에게 적은 득점을 내주면서 이길 수 있었다. 지금은 자료가 일부 소실되어 없지만(필자도 보고 싶다) 그리스가 유로 바스켓이나 여타 대회에서 펼쳤던 수비를 분석하는 글 등을 보면 그들의 수비가 얼마나 촘촘하고 조직적인지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비단 그리스 대표팀 뿐만이 아니라 KBL이나 NBA, 혹은 유럽의 농구리그에서도 공격만큼이나 수비를 중시하는 분위기를 가진 팀은 많다. 대학농구는 2013년의 경희대, KBL은 울산 모비스 피버스나 원주 동부 프로미, NBA에서는 샌안토니오 스퍼스와 얼마 전 우승을 차지한 골든 스테이트 워리어스. 유럽 농구팀은 그리스 대표팀 다수가 포진한 그리스의 올림피아코스나 바르셀로나와 더불어 스타 선수들이 많은 스페인의 레알 마드리드 농구팀 등이 강력한 공격력과 더불어 끈끈한 수비력을 지닌 팀으로 꼽히고 있다.

사실 수비라는 것은 잘 되어도 본전이고 안 되면 그냥 쪽박이다. 수비자는 공격자와 1:1 상황으로 맞붙었을 때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만일 내가 블록을 해야 한다면 상대 선수가 올라가는 타이밍을 재고 거기에 내 운동 신경이나 리치(길이) 등을 고려하여 떠야 하는데 이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파울이란 1)볼을 보유하고 있다는 전제 하에 2)신체의 일부를 팔이나 다리로 쳤을 때 3)이들이 공격을 전개하는 과정을 방해했다는 명목하에 내리는 판정인데 이는 드리블이나 패스하는 과정에서 터치를 저질렀을 때도 심심치 않게 적용된다. 그러한 상황조차도 공격자가 볼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물며 슛 하는 과정에서야 어떻겠는가. 수비자는 절대로 볼이 아닌 그 어느 부위라도 건드려서는 안 된다. 그래서 볼이 어딨는지 항상 체크하면서 수비에 나서야 한다. 공격을 잘 풀어나가는 선수들이 슛을 뜰 때 자꾸 몸을 붙이려는 시도를 하는게 바로 여기에 있다. 심판은 볼을 가진 이의 편이다. 공격권을 탐욕스럽게 뺏어오려는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할 이유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11 05:21: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