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놀러온 친구가 묻습니다. '이동네는 뭘 잘하냐?'

사실 어딜가나 밥집 술집은 고만고만하지만 왠지 낯선 동네에 오면 기대감이 있나봅니다.

올때마다 학교 주변의 외부인 접대용 술집은 다 데려간 것 같네요. 삼통이나 나파, 제기시장 등등.

이젠 뭐 딱히 고대냄새 나는 술집도 많이 남아있지 않고 해서 그냥 고기나 구워먹으려고 태양화로구이 쪽으로

부지런히 걸어가고 있는데, 머릿속에 퍼뜩 스친 곳이 하나 있었습니다. 여기 쯤이면 괜찮겠지.

(터치패드로 써서 글씨가 더러우니 눈 씻고 보세요)

위치는 보시다시피 영철버거 골목으로 내려오다보면 왼쪽에 코인빨래방이 있고, 그 바로 옆에 허름한

기와지붕이 얹힌 조그만 집이 하나 있습니다. 오늘 소개하려는 집이 바로 여긴데요.

정식 상호는 안암분식입니다. 하지만 저나 주변 사람들은 보통 꼴뚜기집으로 부르곤 해요.

가게는 무척 조그맣고 허름합니다. 테이블은 4~5개밖에 없고, 냉방같은건 기대하면 안됩니다.

화장실은 남녀 구분이 된건지 안된건지 모르겠네요. 좁지만 더럽진 않습니다.

예민하신 분들을 위한 곁다리 정보는 이쯤 하고, 본론으로 들어갑니다.

어떻게 주문할지 고민할 필요 없이 그냥 자리에 앉아서 외칩니다.

'이모 꼴뚜기요'

별로 오래 걸리지 않아 알싸한 장수막걸리와 맛나게 익은 김치, 보들보들하게 익은 꼴뚜기와 소스가 나옵니다.

폰카의 못난 화질과 발로 찍는 제 사진센스로도 꼴뚜기의 보드라운 풍미는 꺾을 수 없습니다

정말 별거 없어요. 그냥 팔팔 끓는 물에 꼴뚜기 대충 데쳐서 옛다 던져주시고는 시크하게 TV보러 들어가시는데

초장소스에 찍어 한입 크게 우겨넣고 우적우적 씹고있자니 왜 자꾸 눈에 먼지가 들어간 것 같이 눈앞이 흐려져올까요

이거 정말 맛있습니다. 돌 지난 우리 조카 볼살보다도 보들보들하고, 비린내 하나 없이 소스 안찍어먹어도 감칠맛나요.

김치도 적당히 맵고 적당히 시어서 막걸리 안주에 최적화된 맛을 자랑합니다.

이 희고 고운 살결.. 날 가져요라고 외치는게 들리지 않나요

참고로 이 사진은 좀 먹다가 갑자기 생각나서 찍은겁니다. 보시는 것보다 양이 많아요.

정신없이 꼴뚜기를 들이키다가 이제 또 뭐시킬까 생각하고 있는데 옆자리에 계시던 여성분들이 일어나시면서

꼴뚜기 많이 남겨서 죄송하다고 이모님께 연신 고개를 숙이고 있더군요. 그래서 지체없이 그거 저희 달라그랬더니

식었다면서 아예 새로 데워서 주십니다. 막걸리 남긴것도 먹으라며 갖다주시는 쏘쿨한 이모님이십니다.

덕분에 배를 너무 빵빵하게 채워서 다른건 못시켰습니다. 계란말이랑 국수 먹으려고 했는데..

여기서 잠깐 다른메뉴 소개를 하자면

식사류는 칼국수, 비빔국수, 잔치국수(2500원)가 있고, (가격표 사진을 찍어왔는데 나머지는 잘 안보여요...)

안주류는 꼴뚜기, 병어회, 오징어볶음, 제육볶음(이유는 모르겠지만 줄이 그어져있음), 두부, 빈대떡 등입니다.

꼴두기는 만원, 병어회도 그정도 하는거 같고, 나머지는 5천~6천원 선입니다. 무척 싸죠.

칼칼한 잔치국수랑 대충 부친듯한 계란말이가 이 집의 슈퍼 서브입니다.

이 집에 찾아가실 분들을 위해 한가지 정보를 드리자면, 어지간하면 이른 초저녁에 가시는걸 추천드립니다.

이모님이 드라마를 너무 좋아하셔서 꼭 다 보셔야 되는데, 드라마가 시작하는 7시 반 무렵부터는 안방에 들어가

계시기 때문에 주문하기가 쪼끔 죄송스럽습니다. 이때는 술도 이모 술가져갈께요하고 그냥 냉장고에서 꺼내옵니다.

안주를 주문하면 나와서 만들어주시긴 하는데, 유난히 손길이 빨라지십니다. 그러다 9시쯤 되면 문닫을 시간 됐다고

등떠밀어 보내십니다. 다른 술집에서 그러면 왠지 짜증나는데, 이상하게 여기서는 괜찮아요.

모처럼 시원한 막걸리에 맛있는 안주로 기분좋게 배를 채웠습니다. 친구 녀석도 만족한 눈치더군요.

깔끔한 프랜차이즈나 으리으리한 가게들이 안암에 생기는 것도 좋지만, 오랜 세월의 때가 곳곳에 묻어있는

이런 사람냄새나는 술집을 저는 더 좋아합니다. 그런 가게들이 거의 다 사라져가는게 많이 안타깝구요.

이집 맛있는건 동네 어르신들과 단골 교수님들이 보증합니다. 제 보증따위는 있어도그만 없어도그만..

목이 칼칼하고 주머니는 가벼운 날에 가보기 딱 좋은 꼴뚜기집.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