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넋두리성 스압)


음식점을 평가하는 기준중에 제일 중요한 항목은 역시나 음식 맛이겠지만, 인간에게 먹는다는 행위가 어찌나 섬세하고 중요한 일이던지 밥 먹는 환경이 불편하면 먹는 즐거움을 제대로 못 느끼기에 음식 맛 이외에도 분위기, 친절도 등의 항목도 따져가면서 음식점을 선택하게 되는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날씨가 갑자기 쌀쌀해진 최근 일주일 동안 5회 음주 및 잠실 직관의 스케줄을 소화하고 나니, 오늘 갑자기 몸이 으슬으슬하여 뜨끈한게 먹고 싶어졌고, 저녁때 연구실 후배들과 함께 병천 순대를 갔습니다. 순대국에 들깨가루 좀 뿌려주고 양파 몇 개 넣고 잘라놓은 고추를 듬뿍 넣으면 뜨끈한 국물에 매콤함이 삭 올라오는게 어우 정말 맛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탁 끝에 놓여져 있는 수저통 때문에 반찬을 올려 놓을 수 없다며 왜 수저통을 벽 쪽에 놓지 않았냐는 주인 아저씨의 훈계를 들으니 참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수저통 때문에 반찬을 놓기 어려운 상황이면 '이것 좀 저쪽에 치워주겠나' 한 마디면 문제없이 해결 될 일인데 말이죠. 그리고는 역시나 식탁 끝에 놓여져 있던 휴지도 왜 여기에 놓냐며 친절하게 휴지 놓는 위치까지 정해주시더라구요. 당연히 수저통과 휴지는 벽 쪽에 놓아야 하는데 왜 이러냐라고 말씀하시는 듯 했습니다.

사실 예전에도 병천순대에서 기분 상한적이 있었습니다. 그 날은 일요일 오전 11시 조금 넘은 시간이었고 손님 몇 분이 각각 테이블을 차지하고 순대국을 드시고 있었습니다. 저도 들어가서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 앉았죠. 그랬더니 훈계를 시작하셨습니다. 여기 앉으면 장사 어떻게 하냐며 어떤 손님이 이미 앉아 있는 6인 테이블로 저를 인도해주셨죠. 손님 많을 때 한 사람이 한 테이블씩 차지하고 있으면 가게 입장에서 손해인 것 당연히 잘 이해하고 있는 터라, 아저씨께서 '미안한데 단체손님이 올지 모르니 자리 좀 옮겨주시게'라고 좋게 말씀하셨으면 역시나 아무 문제없이 자리를 옮길 상황이었는데, 참 기분이 안 좋았습니다.

그래도 순대국은 참 맛있었고, 이후에도 그 맛이 생각 날 때면 계속 병천순대를 찾아갔습니다…만, 오늘 또 이런 일이 발생하니 내가 앞으로 여기 또 올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아까 수저통&휴지 위치 선정 문제가 발생한 직후 기분이 상해서 '휴지 쓰려고 여기 갖다 놓은거구요, 휴지 다 떨어졌으니 휴지 좀 채워주세요'라고 인상 팍 쓰고 말씀드렸더니 다 먹고 나갈 때까지 휴지를 안 채워주시더라구요. 아저씨께서도 기분이 상하셨나봐요. 그래서 밥 다 먹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생각을 했습니다. 아저씨가 볼 때 나는 버릇없는 나쁜 젊은이고, 내가 생각할 때 아저씨는 식당에서 손님에게 왜 친절해야 하는지 잘 모르시는 어르신이니, 내가 그 식당에 안 가는 것이 인류 전체 평화 지수를 한 단계 올리는 것이 아닐까. 친구들과 함께 Soul food라 극찬하며, 맛게에 순대국 이야기 나오면 언제나 병천 순대를 추천하던 저였는데 참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병천순대 주인아저씨는 나쁜 분입니다!!!를 주장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사실은 오히려 친절하신 쪽에 가까워요. 저런 트러블이 생긴 건 제가 병천 순대를 방문한 수 많은 날 중 딱 두 번 일어난 것이거든요.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음식점이란 곳이 기분 좋게 밥 먹으러 들어 갔다가도 사소한 것에도 기분 상해서 나올 수 있는 곳이라 음식점 운영하시는 분들께서 이런걸 조금 더 신경 써주시면 서로서로 참 좋겠다~라는 것입니다.



사실 지금 말씀 드리고 있는 주제와 관련하여 개인적으로 가장 실망한 곳은 작품86입니다. 위에 말씀 드린 병천 순대 이야기는 제 경험에 국한된 일이지만, 작품86은 여기 맛게에서도 몇 번 이야기가 나올 만큼 주인아저씨의 최근 모습은 안타까울 정도입니다. 가격도 착하고 안주도 맛있는 참 좋은 곳이고, 10년 넘게 한 자리 지켜오면서 많은 고 학번들에게는 좋은 추억을 안겨주는 곳이긴 하지만, 아끼는 후배들과 소주 한 잔 하러 갔더니 적게 주문한다며 안 판다고 하셔서 쫓겨난 경험을 하고 난 후, 그리고 이와 유사한 불친절 경험담들을 여기저기서 보고 들으니, 다시 가기가 꺼려지더라구요.

본래 40년간 음식만 만들어오신 욕쟁이 할머니네서 잔소리 한 바가지씩 먹으면서 맛있는 음식도 먹고 수명도 늘리는게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아름다운 문화일지는 모르겠으나, 그 욕과 잔소리 속에서 진심이 담긴 애정을 찾을 수 없다면- 돈 내고 먹으러 온 손님이 사장님한테 자신의 사교성을 뽐내며 시키는 대로 할테니 제발 먹을 것 좀 주세요-라고 빌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글 쓰다가 갑자기 생각난 분이 있는데, 바로 이공냉면 주인 아주머니입니다. 이공냉면은 학교 앞 밥집치고 아주 약간 비싼 듯 하지만 다양한 메뉴 중 어느 것을 시켜도 무난한 맛 이상을 보여주기 때문에 저는 괜찮은 밥집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특히나 자연캠 근처 식당 중 교수님, 직장인 등 어르신들이 자주 찾는 식당이기도 한데요 (비싼 식당 말고 부담 없이 갈 만한 식당 중에서), 이는 메뉴 선정이나 레시피 개발에 있어서 주인 아주머니께서 옛날 스타일을 좋아하시기 때문에, 음식 맛이 전반적으로 '요즘 젊은이'들 보다는 '나이 좀 있으신 분들'의 입맛에 맞게 만들어져서 그런 것 같습니다.

여튼, 이공냉면을 가본 사람들이 매우 싫어하는 것 중에 하나가 주인 아주머니께서 음식을 권유하시는 것입니다. 말이 권유지 듣는 사람 입장에서 부담스러울 정도로 '오늘은 딴 말 말고 그냥 이거 먹어. 괜찮아 맛있어'라고 연이어 말씀하시고, 그 제안을 거절할 경우 매우 실망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시죠. 이공냉면 주인 아주머니께서는 그 날 좋은 재료를 사용한 메뉴가 있거나 혹은 평소와는 다른 특별한 구성의 메뉴가 있어서 이것을 손님들에게 꼭 정말 드셔보시라고 추천하실 때 먹어보라고 저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역효과가 많이 나죠.

역효과가 일어나는 이유는 어르신들이 애정을 표현하는 방법과 젊은이들이 애정을 표현하는 방법 사이에 너무나도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겠죠. 저는 이공냉면 주인 아주머니께서 저런 모습을 보이실 때 마다 제 어머니가 생각나곤 합니다. 가족과 함께 식사 할 때 어머니께서 하시는 것이 있거든요. '훈재야 이거 한 번 먹어봐' 하면서 내 숟가락에 반찬 올려놓기. 저는 이게 참 싫어서, 어머니께서 이렇게 하실 때마다 어머니 제가 알아서 먹을게요~ 라고 말씀드리지만 (심지어 제 동생은 막 화냄 ㅋㅋ) 어머니께서는 절대 변하지 않으세요. 이공냉면 주인 아주머니든 제 어머니든 당신들께서 지금껏 살아오면서 해오던 표현 방법과 우리들의 그것이 너무나도 달라 발생하는 문제이니 어떻게 해야 할 지 참 난감합니다. 어쨌든 이공냉면을 자주 가고 주인 아주머니와 길에서 만나도 인사하는 사이이니 안 바쁘실 때 한 번 말씀드려보려구요. 저도 이공냉면은 좋아하지만 주인 아주머지 메뉴 권장 어택은 안 하셨으면 좋겠어요. 그냥 권장만 해주시면 좋을텐데.




결론은 좋은 식당임에도 불구하고 사장님들께서 그들이 보여주는 모습에 의해 그곳에 안가고 싶어지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 속상하다는 것입니다. 그들께서는 자신들이 어떠한 모습으로 비쳐지는 지 모르실 수도 있겠지만, 혹은 ‘세대차이’가 나는걸 어찌하냐- 라고 생각하고 넘어가버리실 수도 있겠지만, 이왕이면 신경 써주시면 좋잖아요, 특히나 음식을 맛있게 먹어야 하는 음식점이니까요. 가뜩이나 안암에는 '괜찮다' 소리 나오는 음식점도 별로 없는데, 좋은 곳은 좋은 곳으로 영원히 남아있으면 좋겠어요. (그렇다고 졸업 안하고 영원히 안암에서 살겠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별 내용 아닌데 괜히 길게 썼네요. 글 엄청 못 써서 부끄러운데 (모태 공대생), 길어서 몇 분 안 읽으실 거라고 믿고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31 14:3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