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탄탄한 위상의 구단
최근 광기의 화신인 악당이 탄생하는 과정을 다룬 영화 ‘조커’가 많은 인기와 관심을 얻고 있습니다. 조커와 배트맨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봤을, 명감독 크리스토퍼 놀란의 3부작 중 마지막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서 미식축구 경기장이 붕괴하는 장면을 기억하시나요? 그 장면에서 등장하는 팀은 사실 실제 NFL 소속 팀이 이름을 바꿔 출연한 것입니다. 바로 이번 글의 주인공 피츠버그 스틸러스입니다.
스틸러스는 무려 6번의 슈퍼볼에서 승리하며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와 함께 최다 우승 기록을 가진 대표적인 명문 팀입니다. 우리나라엔 아마 한국계 미국인인 하인스 워드의 소속팀으로 잘 알려져 있을 겁니다. 인종, 계층, 신체 능력 등 여러 불리한 여건을 딛고 2번의 슈퍼볼 우승과 40번째 슈퍼볼 MVP를 거머쥔 워드의 활약상은 명가의 와이드 리시버로 손색이 없는 위대한 모습이었습니다.
지금은 자타공인 강팀의 위치를 굳건히 하는 스틸러스지만 모든 구단이 그러하듯 그 시작은 미약했습니다. 1933년 MLB의 피츠버그 파이리츠와 같은 이름을 가지고 창단한 스틸러스는 1940년 현재의 이름으로 바뀝니다. 제2차 세계대전에 선수들이 징집되어 필라델피아 이글스와 연합하여 리그에 참가하기도 했던 스틸러스는 창단 이후 38년간 딱 1번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던 대표적 약체였습니다.


2. 피츠버그의 황제
그랬던 스틸러스의 찬란한 역사를 열어젖힌 이는 바로 ‘The Emperor Chaz’ 척 놀 감독이었습니다. 그는 1969년 37세의 나이로 부임해 1991년 은퇴할 때까지 NFL 역사상 4번째로 긴 기간 동안 스틸러스의 감독을 역임했습니다. 그의 지휘 아래 스틸러스는 무려 4번의 슈퍼볼 우승을 차지하며 리그를 주름잡는 강호로 자리매김합니다. 4번의 우승이 이루어진 70년대 후반은 스틸러스가 지배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클리블랜드에서 태어난 놀 감독은 정육점에서 일하며 스스로 고등학교 학비를 벌어야 할 정도로 가난한 유년 시절을 보냅니다.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학업과 운동에 정진하던 그는 지역 신문에 이름이 오를 정도로 촉망받는 유망주였습니다. 클리블랜드 브라운스에 입단하여 라인배커로 활약했던 놀 감독은 2번의 NFL 우승을 차지한 후 27살의 젊은 나이에 은퇴한 후 지도자 경력을 시작합니다.
놀 감독은 선수 시절 코치진의 지시를 매끄럽게 전달하는 역할을 맡았을 뿐만 아니라 야간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을 정도로 지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마치 학교 선생님처럼 선수들을 다정하고 세심하게 지도하는 것으로 유명했으며 유망주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데에도 유능한 감독이었습니다. 놀 감독이 스틸러스에 부임한 후 지명된 신인들은 그의 지도 아래에서 영광스러운 역사의 주역으로 성장합니다.


3. 금발의 폭격기
톰 브래디, 페이튼 매닝, 일라이 매닝, 닉 폴스 등 예전 글에서 등장한 선수들의 포지션인 쿼터백은 미식축구에서 가장 중요한 포지션으로 꼽힙니다. 날카로운 시야, 정확한 패스, 묵직한 카리스마를 모두 갖춘 쿼터백은 팀의 리더이자 주인공으로 경기를 지배합니다. 스틸러스의 전성기 역시 한 명의 위대한 쿼터백과 함께 시작됩니다. 그는 바로 ‘The Blonde Bomber’ 테리 브래드쇼입니다.
현재는 방송인으로서 왕성한 활동을 이어나가는 브래드쇼의 선수 시절은 전설이란 수식어가 아깝지 않았습니다. 스틸러스에서 14년간 활약하며 4번의 슈퍼볼 우승과 2번의 슈퍼볼 MVP, 1번의 정규시즌 MVP를 차지한 그는 당대의 스타였습니다. 비록 은퇴 이후 톰 브래디에게 최다 슈퍼볼 우승 기록을 내주었으나 2번의 2연패를 이룬 업적은 그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할 압도적인 위용을 자랑합니다.
대학 시절부터 전국구 유망주로 주목받았던 브래드쇼는 1970년 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1순위로 지명됩니다. NFL 역사에서도 손꼽는 완력의 보유자였던 그는 송곳 같은 패스를 경기장 이곳저곳에 찔러넣으며 팀의 승리를 만들어냅니다. 비록 사적으로는 여러 문화적 차이와 카리스마의 충돌로 적대적인 관계였던 브래드쇼와 놀 감독이었지만 경기장 안에선 서로의 능력을 존중했기에 완벽한 호흡을 자랑했습니다.


4. 강철 장막
대학 미식축구계의 전설 폴 브라이언트 감독은 이런 명언을 남긴 바 있습니다. “Offense sells tickets, defense wins championship.” 그의 말처럼 화끈한 공격은 팬들을 열광하게 하지만, 우승을 위해서는 단단한 수비가 필수적이고 이는 스틸러스에도 어김없이 적용되었습니다. 어쩌면 스틸러스의 전성기를 이끈 주역은 브래드쇼가 이끌었던 공격보다 ‘Steel Curtain’이라 불리던 수비진일지도 모릅니다.
영국의 위대한 총리 윈스턴 처칠의 연설에서 등장한 단어 ‘철의 장막’에서 유래한 별명은 스틸러스의 수비를 수식하는 데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불같은 경쟁심과 믿음직한 리더십을 자랑하던 75번 ‘Mean’ 조 그린을 필두로 한 68번 L.C.그린우드, 63번 어니 홈스, 78번 드와이트 화이트 등의 선수들은 악착같은 수비로 상대 팀을 공포에 떨게 합니다. 보는 이가 아찔할 정도로 거칠고 강력한 태클은 황소의 돌진을 방불케 했습니다.
놀 감독이 부임한 첫해 1승 13패를 기록했던 스틸러스는 공수 양면에서의 전설적인 활약상들에 힘입어 점차 성적을 끌어올리기 시작합니다. 1970년 5승 9패, 1971년 6승 8패를 거둔 스틸러스는 마침내 1972년 11승 3패라는 호성적을 거두게 됩니다. 1963년 이후 9년 만에 처음으로 5할 이상 승률을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1947년 이후 25년 만의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한 것입니다.


5. 완벽한 포구
참으로 오랜만에 맞이한 포스트시즌에서 스틸러스가 마주한 상대는 오클랜드 레이더스였습니다. 레이더스는 기행으로 유명한 구단주 알 데이비스와 EA의 유명 게임 시리즈의 제작 참여 및 전설적인 해설자로 유명해지는 명장 존 매든 감독이 이끌고 있었습니다. 1970년 NFL에 가입한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전력을 자랑하고 있던 레이더스는 이후 마이애미 돌핀스와 함께 스틸러스의 숙적으로 자리매김합니다.
당시 스틸러스의 홈구장이자 지금은 철거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진 쓰리 리버스 스타디움에서 양 팀은 자웅을 가리게 됩니다. 1쿼터와 2쿼터 모두 무득점으로 팽팽하게 진행되던 경기는 3쿼터 스틸러스가 선취점을 얻어내며 요동치기 시작합니다. 스틸러스는 4쿼터에도 득점에 성공하며 6대0으로 앞서 나가지만 레이더스가 터치다운을 성공시키며 경기 종료를 단 1분 17초를 남겨두고 6대7 역전을 허용하고 맙니다.
필사의 공격을 감행한 스틸러스였지만 22초의 시간과 1번의 공격 기회만을 남겨둔 채 40야드의 거리를 뚫어내야 하는 상황에 부닥칩니다. 놀 감독 지시로 브래드쇼는 와이드 리시버 대신 하프백 존 푸쿠아에게 패스를 전달합니다. 레이더스의 수비수와 푸쿠아가 공중에서 충돌하며 뒤로 날아가던 공을 잡은 이는 프랑코 해리스였습니다. 그의 질주와 터치다운은 극적인 역전승으로 이어졌고 ‘Immaculate Reception’이라는 이름으로 역사에 길이 남습니다.


6. 후일담 및 근황
아쉽게도 레이더스에 이어 만난 돌핀스에 패하며 포스트시즌을 마무리한 스틸러스는 상기했듯 전성기를 이어나갑니다. 놀 감독 이후 부임한 빌 카워 감독과 마이크 톰린 감독 역시 훌륭한 지도력을 보여줍니다. 2000년대 들어 2번의 슈퍼볼 우승을 추가한 스틸러스는 워드와 함께 우승을 이끈, 꾸준함과 든든함을 겸비한 엘리트 쿼터백 ‘Big Ben’ 벤 로슬리스버거 등의 활약으로 명가의 역사를 최근까지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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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이번엔 영어 자료를 주로 참고하느라 꽤 시간이 많이 소요됐습니다. 더 부지런히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지금은 누구나 인정하는 강팀 역시 그 시작은 미약했다는 것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어떤 자세로 삶을 이어나가야 하는지 보여주는 예라고 생각합니다. 다음 글은 원래 순서상 먼저 올라와야 했던 농구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이야기도 기대해 주세요!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26 02:2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