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뜨거운 땀과 피가 흐르는 사각 링
흥분한 관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두 선수가 힘과 기술을 겨룹니다. 강력하면서도 화려한 공방이 이어지고 관중석의 열기는 경기장을 폭발시킬 정도로 고조됩니다. 이따금 나오는 반칙이나 비겁한 공격은 관중들에게 야유를 끌어냅니다. 필살기가 작렬한 후 심판의 3 카운트가 진행되었고 승부의 향방이 가려집니다. 기진맥진한 승자가 챔피언 벨트를 들어 올리고 관중들은 우레와 같은 환호를 보냅니다. 이것은 바로 프로레슬링입니다.
많은 사람이 프로레슬링을 스포츠라고 정의하는 것을 꺼립니다. 승패가 정해져 있고 경기 과정이 미리 합의된 일종의 연극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혹자는 짜고 치는 사기극을 왜 보냐며 비난하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프로레슬러들이 하나의 경기를 치르기 위해 하는 노력, 감수해야 할 위험성, 그리고 관중들에게 선사하는 감동은 여타 스포츠 종목들보다 절대 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세계의 여러 프로레슬링 단체 중에서도 가장 압도적인 규모와 명성을 자랑하는 곳은 미국의 World Wrestling Entertainment, 줄여서 WWE입니다. 1953년 설립된 CWC가 WWWF, WWF를 거치며 북미 레슬링 시장을 평정한 WWE는 세계로 그 영향력을 넓힌 명실상부 최고의 프로레슬링 단체입니다. 프로레슬러라면 누구나 한 번쯤 선망하게 되는 WWE 챔피언. 그 목표를 가슴 속에 품은 한 사나이의 이름은 바로 대니얼 브라이언이었습니다.


2. 인디 레슬링계의 거물
전설적인 프로레슬러 ‘Heart Break Kid’ 숀 마이클스에게 프로레슬링을 배운 브라이언은 1999년 프로레슬러로서 첫발을 내딛습니다. 인디 레슬링 무대를 잠시 떠돌던 브라이언은 지금의 WWE인 WWF의 수련생으로 입단합니다. 잔뼈 굵은 테크니션 윌리엄 리갈의 훈련으로 차근차근 성장하던 브라이언이었지만 왜소한 체구의 그를 높게 평가하지 않았던 WWF는 계약을 연장하지 않았습니다.
브라이언이 본격적으로 빛나기 시작한 것은 Ring Of Honor, ROH에 데뷔하고 나서였습니다. 레슬러의 외모보다 경기력을 우선시하는 단체였던 ROH에서 브라이언은 본인의 기량을 유감없이 발휘합니다. 살벌한 타격기, 정교한 관절기, 몸을 아끼지 않는 공중기 등을 맘껏 구사하며 사모아 조, 오스틴 에리즈, 나이젤 맥기니스, 호미사이드 등 쟁쟁한 프로레슬러들과 치열한 대립을 가진 브라이언은 곧 인디 무대의 스타로 성장합니다.
‘The American Dragon’이라 불리며 프로레슬링 팬들에게 굉장한 인기를 얻은 브라이언은 유명 프로레슬링 웹사이트인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가 선정하는 최고의 선수 자리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거물로 성장한 그에게 눈독을 들인 곳은 다름 아닌 WWE였습니다. 비록 WWE와의 첫 인연은 아쉽게 마무리되었지만, 이제는 초짜 프로레슬러가 아니었던 브라이언은 다시 한번 최고의 무대에 도전장을 내밉니다.


3. 다시 돌아온 최고의 무대에서 맞닥뜨린 고난
WWE의 신인 양성 프로그램이었던 NXT의 1기 참가자로 등장한 브라이언은 많은 팬의 기대를 받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WWE의 수뇌부는 그를 높게 보지 않았고 브라이언의 멘토 역할을 맡은 악역 프로레슬러 미즈와 해설자 마이클 콜은 시종일관 그를 비웃거나 무시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결국, NXT에서 가장 먼저 탈락한 브라이언이었지만 다행히 NXT 참가자들 전원이 WWE의 TV쇼 RAW를 침공할 때 합세하며 WWE로 다시 돌아옵니다.
그러나 브라이언은 링 아나운서의 목을 졸랐던 모습이 가족을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프로레슬러 크리스 벤와를 떠올리게 한다는 이유로 즉시 방출되고 맙니다. 또다시 WWE와의 인연이 안 좋게 끝나는 듯했던 그 순간 스승 마이클스의 강력한 반발로 다시 WWE에 복귀하게 됩니다. WWE 4대 PPV인 섬머슬램에서 NXT 선수들에 맞선 WWE 선수들의 연합군 공석을 메우며 악연이었던 미즈를 물 먹인 통쾌한 복귀였습니다.
이내 머니 인 더 뱅크 경기에서 우승하며 챔피언에게 언제든 도전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브라이언은 ‘The World’s Strongest Man’ 마크 헨리에게 공격당해 쓰러져 있던 거인 레슬러 빅 쇼로부터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을 따냅니다. 이후 비겁한 모습의 악역임에도 팬들의 환호와 ‘Yes’ 구호를 끌어낸 브라이언이었지만 수뇌부의 저평가는 끊이질 않았습니다. 결국, WWE 4대 PPV 중에서도 가장 권위 있는 무대인 레슬매니아에서 상대한 셰이머스에게 18초 만에 패배하는 굴욕을 맛보며 브라이언의 챔피언 집권은 마무리됩니다.


4. 끝나지 않던 역경과 좌절
WWE 고위층은 악역임에도 환호받는 브라이언에게 ‘Yes’ 구호 대신 ‘No’ 구호를 외치며 온 사방에 짜증을 부리는 모습을 보이라고 지시합니다. 그러나 멈추지 않는 응원은 결국 브라이언을 선역으로 전환하게 합니다. 지금은 미국의 녹스 카운티 시장을 실제로 역임하고 있는 ‘The Big Red Machine’ 케인과 분노 조절 프로그램에 같이 참여한 것을 계기로 태그팀을 재밌고 유쾌한 모습을 보임과 동시에 WWE 태그팀 챔피언에 오른 것입니다.
태그팀 챔피언을 내려놓은 후 브라이언은 WWE 챔피언이었던 존 시나에게 도전자로 지명받습니다. WWE 역사에 길이 남을 슈퍼스타였던 시나는 당시 수술과 재활이 필요한 큰 부상을 가진 상태였지만 브라이언을 단체를 이끌어나갈 선수로 만들어야 한다며 경기를 강행했습니다. 치열한 경기 끝에 승리한 브라이언은 감격의 챔피언 벨트를 들어 올리지만, 특별 심판을 맡았던 트리플 H의 기습에 이은 ‘The Viper’ 랜디 오턴의 머니 인 더 뱅크 권리 사용으로 5분 만에 챔피언 자리를 잃습니다.
WWE 회장인 빈스 맥맨의 사위이자 챔피언 벨트를 수차례 차지한 바 있는 트리플 H는 브라이언의 수염이 덥수룩한 외모와 작은 체구를 이유로 챔피언 자격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트리플 H는 자신의 권력을 사용해 각종 불이익을 주었고 그 와중에 사이비 종교 교주 같은 모습을 보이던 브레이 와이어트가 이끄는 와이어트 패밀리의 지속적인 습격에 고통받던 브라이언은 결국 굴복하여 스스로 와이어트 패밀리에 일원이 되기까지 합니다.


5. 마침내 정상에 서다
관중들은 고난을 겪는 브라이언을 동정하며 WWE에 분노합니다. 결국, 역반응에 못 이긴 WWE의 결정으로 브라이언은 자신을 괴롭히던 와이어트 패밀리를 응징하며 다시 비상하기 시작합니다. 다시금 월드 챔피언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브라이언은 큰 굴욕을 맛봤던 레슬매니아에서 어려운 도전에 임합니다. 레슬매니아 첫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면 마지막 메인이벤트에서 챔피언에 도전할 수 있다는 기회를 얻게 된 것입니다. 링을 점거하기까지 한 팬들의 성원이 빚어낸 결과였습니다.
75000명의 관중이 열화와 같은 함성을 외치는 가운데 브라이언의 상대는 바로 트리플 H였습니다. WWE의 고위층이자 경력 내내 받아온 무시와 저평가 그 자체를 대변하는 트리플 H는 ‘The King of Kings’, ‘The Cerebral Assassin’ 등의 별명이 말해주듯 막강한 상대였습니다. 부상 부위인 팔을 집중적으로 공격하거나 아내 스테파니 맥맨까지 동원하는 등 비열한 공격에도 불구하고 브라이언은 승리를 거둡니다. 큰 산을 겨우 넘은 브라이언이었지만 경기 후 이어진 트리플 H의 공격에 부상이 깊어지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습니다.
다친 몸을 이끌고 나선 대망의 챔피언 결정전. 상대는 브라이언에게서 챔피언 벨트를 뺏어간 오턴과 로얄럼블 우승자 자격으로 참여한 ‘The Animal’ 데이브 바티스타였습니다. 두 선수 모두 여러 번 월드 챔피언에 오른 바 있으며 트리플 H, ‘Nature Boy’ 릭 플레어와 결성한 에볼루션 소속으로 WWE를 지배했던 강력한 상대들이었습니다. 브라이언은 떨어진 체력, 심해진 부상, 두 선수의 협공, 트리플 H의 난입이라는 수많은 장애물에도 포기하지 않습니다.
아나운서 테이블에서 작렬한 협동 필살기로 들것에 실려 나가기까지 하던 그는 굴하지 않고 일어섭니다. 바티스타가 오턴을 제압한 순간을 틈타 필살기를 연거푸 작렬시킨 브라이언은 항복을 받아내며 챔피언에 등극합니다. 경기장의 관중들은 ‘Yes’ 구호를 외치며 진심으로 그의 승리에 감격했으며 링 위로 올라온 가족들과 함께 브라이언은 위대한 승리를 만끽합니다. 쏟아지는 꽃가루와 터지는 폭죽 속에서 볼품없는 외모의 작은 청년은 우뚝 섭니다.


6. 후일담 및 근황
이후 성공적으로 챔피언 자리를 지켜나가던 브라이언의 발목을 붙잡은 것은 다름 아닌 부상이었습니다. 오랜 프로레슬링 경력 동안 쌓인 상처는 뇌진탕이라는 결과로 나타났고 결국 월드 챔피언 벨트를 스스로 내려놓고야 만 것입니다. 성치 않은 몸 상태에도 WWE 인터컨티넨탈 챔피언을 탈환하는 등 분투하던 브라이언이었지만 결국 부상을 이유로 2016년 아직은 젊은 나이에 은퇴를 선언합니다. 그러나 그의 프로레슬링에 대한 열정은 식을 줄 몰랐으며 2018년 짧았던 이별을 마무리하고 다시 WWE에 복귀합니다. 복귀 후 다시 월드 챔피언을 차지하기도 했던 브라이언은 현재 악역으로도 왕성히 활동하며 팬들을 열광시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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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벌써 10번째 글을 올리게 되는군요. 부족한 글을 사랑해주시는 학우 여러분께 항상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다음 글은 여러 학우께서 보고 싶다고 하신 키움 히어로즈에 관해 쓸 예정입니다. 기대해 주세요.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16 20:24: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