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클래식 음악에 아무리 무지한 사람이라도 베토벤의 이름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최고의 작품들을 써내면서 고전주의와 낭만주의의 가교역할을 하였으며, 음악적 형식을 '완성'하여 확고한 역사로 자리매김했기 때문이다. 술꾼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베토벤을 모차르트처럼 키우려고 하였으나 실패했다. 그러나 베토벤은 곧 궁정극장에서 하프시코드 연주자로 일하게 되었고, 선제후의 성당에서 보조 오르간 연주자로 활약한다. 여기서 그는 정오르간 연주자 요한 알브레히츠베르거에게서 작곡을 배웠다.
  1787년 처음으로 빈을 방문한 베토벤은 피아노 즉흥연주를 통해 모차르트의 관심을 사, 교육을 받을 수 있었으나 제대로 된 교육을 받기도 전에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본으로 돌아갔다. 1792년 다시 빈으로 왔으나 이미 모차르트는 죽은 후였다. 실망한 베토벤은 하이든에게서 작곡을 배우려 하였으나 성격차이로 좋은 교육은 받지 못한 듯하다. 오히려 요한 알브레히츠베르거의 교육이 더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1798년 초부터 베토벤은 귓속에서 계속해서 이명이 들리는 것을 자각했고, 이 소리는 점점 커져 귀가 점차 들리지 않게 되었다. 1802년에 그는 자살을 생각하며 하일리겐슈타트로 가서 유서를 작성한다. 이것이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이다.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 전문--
  나의 동생 카를과 ...에게. 아, 내가 증오에 차있고 고집불통이며 사람들을 혐오한다고 생각하는 너희들, 또는 나를 그런 사람으로 통하게 하는 너희들은 얼마나 부당한가! 너희들은 너희들에게 그렇게 여겨지는 것에 대한 감춰진 이유를 알지 못한다. 어린 시절부터 나의 마음과 정신은 호의와 온정으로 기울어왔다. 심지어 나는 항상 훌륭한 일들을 해볼 생각조차 가졌었다. 그러나 이제 6년째 몹쓸 병에 걸린데다 무능한 의사들이 병을 더 악화시켰다는 것을 한번 생각해 보아라. 해마다 회복되리라는 희망을 잃어가면서 마침내는 치료가 가능하더라도 몇 년이나 소요될 영구불구의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으니, 뜨겁고 활동적인 성격을 지니고 태어나서 사교계 생활의 유희를 좋아하던 나는 일찍이 고립되어 세상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외롭게 살아야만 했다. 때로 나는 이런 모든 것을 극복하게 되기를 바랐다.

  아! 그때마다 나는 얼마나 가혹하게 더 이상 듣지 못한다는 참담한 경험을 되풀이하게 되었던가. 그렇지만 나는 아직 사람들에게 "더 크게 말하시오. 나는 귀가 먹었으니까요"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아! 어느 누구도 완벽한 상태여야만 할 감각, 과거에 내가 아주 완벽한 상태로, 지금까지 극소수의 음악가들만이 알았던 완벽한 상태로 소유했던 감각의 약화를 어떻게 고백할 수 있단 말인가? 아! 나는 그럴 수 없다. 너희들과 기꺼이 어울려야 할 때 내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보게 되면 나를 용서해다오. 내가 겪는 불행은 내게는 이중으로 괴롭단다. 왜냐하면 이 불행 때문에 나는 오해받고 있음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내게는 이제 더 이상 인간 사회에서의 작극물도 지적인 대화도 상호간의 심정 토로도 존재하지 않는다. 완전히, 또는 거의 혼자이다. 내가 다시 사회와 접촉할 수 있는 것은 정확히 가장 절대적인 필요성이 그것을 요구하는 한내 내에서이며 나는 즉시 무시무시한 고뇌, 즉 나의 상태가 목격되리만큼 노출되어 있다는 고뇌로 괴로워진다.

  나를 붙드는 것은 예술, 바로 그것뿐이었다. 아! 내 속에서 느껴지는 움트는 모든 것을 내놓기 전에 이 세상을 떠난다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다. 그렇게 해서 나는 비참한 정말로 비참한 이 목숨, 조금이라도 갑작스런 어떤 변화에도 가장 건강한 상태에서 최악의 상태로 바뀔 수 있을 만큼 매우 민감한 이 몸뚱아리를 연장시켜 왔다. 그것은 바로 '인내'였다. 나는 이제 그것을 안내자로 삼아야 하며 또 그렇게 했다. 나는 비정한 운명의 신들이 흡족해 하며 줄을 끊을 때까지 기다리려 했던 결심을 간직하기를 바랐다. 나는 어쩌면 회복될 것이고 어쩌면 그렇지 못할 것이다. 나는 용기가 있다. 스무 살에 벌써 철학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예술가에게는 훨씬 더 힘든 일이다. 하나님, 당신은 저 위에서 제 마음을 들여다 보실 수 있습니다. 당신은 그것을 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인류애와 선을 베풀려는 욕심이 제 마음에 깃들여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 사람들이여, 언젠가 당신들이 이 글을 읽게 된다면 그때는 당신들이 내게 정당하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하시오. 또한 불행한 사람은 자신을 닮았으며 자연이 내린 모든 장애에도 불구하고 예술가와 위인의 대열에 끼기 위해 모든 것을 다했던 사람을 보면서 위안을 삼도록…

  자, 됐다. 기꺼이 나는 죽음 앞으로 나아간다.만약에 내가 예술을 위해 나의 모든 가능성을 다시 한번 펼쳐 보일 기회를 갖기 전에 죽음이 찾아온다면, 그때는 나의 운명의 신이 아무리 가혹할지라도 내게는 죽음이 너무나 일찍 다가오는 것이다.그래서 나는 죽음이 더 늦게 오기를 바란다. 그렇지만 죽음이 일찍 다가오더라도 나는 행복할 것이다. 죽음은 나를 끝없는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지 않겠는가? 언제든지 오너라. 나는 용감하게 네 앞으로 너서련다. 안녕, 내가 죽더라도 나를 완전히 잊는 말아다오. 나는 너희들에게 그것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왜냐하면 나는 생전에, 너희들을 행복하게 해주려고 자주 생각했기 때문이란다. 부디 행복하거라.

하일리겐슈타트에서, 1802년 10월 6일 - 루드비히 판 베토벤


--<4일 뒤에 첨가한 내용>--
나의 카를과 ...에게, 내가 죽은 후에 읽고 집행할 것

  이처럼 아주 침통하게 네게 작별을 고한다. 그래, 바라마지 않던 희망, 적어도 어느 정도까지는 회복되리라는 지금까지 지녀왔던 이 희망을 나는 이제 완전히 포기해야겠다. 가을 잎이 떨어져서 시들듯이 내 희망도 역시 메말라버렸다. 내가 이곳에 온 것처럼 나는 떠나간다. 황홀한 여름날 나를 자주 들뜨게 하던 그 호기롭던 용기조차 사라져버렸다. 아, 하느님 제게 한번은 순수한 즐거움으로 가득 찬 날을 보내주십시오. 아주 오래 전부터 진정한 즐거움이 일으키는 마음의 반향은 제게 낯선 것이 되었습니다! 언제입니까, 아 언제입니까, 아 하느님 제가 다시 자연과 인류의 성전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까요? 절대 안 된다고요? 안됩니다. 그것은 너무나 가혹합니다!

하일리겐슈타트에서, 1802년 10월 10일

cf. 루드비히 베토벤은 동생이었던 요한 베토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수신인 란에 요한의 이름을 비워놓았다.

  이 유서는 베토벤의 작품 활동 시기를 가르는 분수령이 된다. 그로부터 10년간 음악사에 길이 남을 걸작이 마구 쏟아졌기 때문이다. 1812년까지 교향곡 2-8번(여기엔 유명한 5번 "운명"과 6번 "전원"을 포함되어 있다), 피아노 협주곡 4,5번(여기엔 유명한 5번 "황제"가 포함되어 있다),  바이올린 협주곡, 오페라 <피델리오>, 3개의 <라주모프스키 4중주> 등의 주옥같은 작품이 쏟아져 나왔다.

  1812년 이후 베토벤이 새로 작곡한 작품의 수는 크게 줄어들었다. 그리고 1817년부터 다시 왕성한 활동을 하며 작품을 쓰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죽기 전까지 그는 <피아노 소나타 29번 "함머클라비어">, 후기 소나타 3곡, <디아벨리 변주곡>, <장엄 미사> 등의 대작을 써냈다. 베토벤 최고의 걸작인 동시에, 인류 최고의 걸작으로 칭송되는 <교향곡 9번 "합창">은 1824년 작곡되었으며, 이는 베토벤이 청력을 거의 잃었을 무렵이다. 1824년 5월 7일의 초연 당시 공동 지휘를 했던 베토벤은 12년만에 처음 공식 무대에 서는 것이었는데, 그 날 공식적인 지휘자로 되어 있던 극장의 음악감독 미카엘 움라우프는, 2년 전 베토벤의 오페라 <피델리오>의 리허설을 베토벤이 지휘하였다가 실패한 사실을 기억해, 연주자와 성악가들에게 베토벤의 지휘를 따르지 말고 자신의 지휘를 따를 것을 미리 이야기했다고 한다. 기록과 참여자들의 회고에 나타나는 일화가 여럿 있는데, 그 중의 하나에 따르면, 베토벤은 마지막 악장의 연주가 끝나 청중들의 박수가 울릴 때까지도 지휘를 계속하고 있어 알토를 맡았던 독창자 카롤리네 웅어(Caroline Unger)가 그를 돌려 세워 인사하게 했다고 한다. 또 베토벤은 청중들로부터 다섯 번의 '기립 박수'를 받았는데, 당시 황제 부부가 공연장에 입장할 때 세 번의 '기립 박수'를 받던 통례에 비추어 볼 때, 귀족도 아니며 게다가 (궁정에서는 하인으로 취급되던)작곡가에 불과했던 베토벤이 다섯 번의 '기립 박수'를 받은 것은 대단한 일이었다고 한다.

  베토벤 9번은 매년 송년 음악회에서 연주되곤 하며, 동서독일이 통일될 때 연주되었고, 우주 어디엔가 존재할 외계인에게 지구를 알리기 위해 우주로 보낸 음악이기도 하다. 심지어는 MB의 취임 피날레를 장식하는 곡으로 연주되기도 하였다 ^^;;

   1827년 거행된 그의 장례식에는 동료 예술가들, 귀족들, 많은 군중들이 모여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음악가를 추모했다.그의 묘비명은 딱 한 단어로 되어있다. '베토벤'.




2.
  많은 지휘자, 연주자들이 베토벤의 작품을 훌륭하게 연주하는 것을 일생일대의 목표로 삼기도 한다. 그만큼 베토벤의 작품은 명연주가 많이 나왔다. 
  <베토벤 교향곡 9번 op.125 "합창">의 경우, 지휘자들의 실력을 판가름하는 잣대가 되기도 한다. 푸르트뱅글러, 아바도, 카라얀, 번스타인, 가디너, 텐슈테트, 헤레베헤 등이 좋은 평가를 받고 있으나, 역시 직접 들어보는 것이 제일 좋을 것 같다. 좋은 음악이란 자신의 취향에 부합하는 음악이기 때문이다. 
  

고려대학교 고전음악감상실에서 보내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