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 배우의 잘못된 선택 - 키아누 리브스

배우들도 사람인지라, 그들도 가끔은 잘못된 선택을 합니다.
그들의 잘못된 선택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아니 저만한 배우가 왜 이딴 영화에 나와서 저딴 짓을 하고있는거지?'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지만,
주연급 배우들은 성공에 대한 확신이 들때에 비로소 작품에 임한다고 합니다.
흥행작에 대한, 배우와 관객의 인식차가 존재하는 셈이지요.

그러나 배우와 관객의 간극을 감안하더라도
키아누 리브스의 2000년도 행보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1999년 SF의 전설이라 불리는 '매트릭스'에 출연하여
영화의 메가 히트에 힘입어 점점 잊혀져가던 자신의 존재를 탑스타 반열에 올려놓는 한편,
동서양이 공존하는 신비로운 마스크, 액션 히어로로서의 고귀한 이미지를 관객들에게 각인시켜
차기작에 대한 기대감을 엄청나게 높여놓았습니다.

그랬던 그가 1년 후에 내놓은 작품이 바로 '와쳐'

아...
으아니..
아아아아ㅏ앙ㅇ아아암ㄴㄻㄴㅇㄹ

이 작품은 그야말로 희대의 망작 오브 망작입니다.
쓰레기라는 표현이 아까울정도..
내러티브, 스토리, 연출, 캐릭터와 배우들의 연기, 미술과 무대장치 등등
어느 것 하나 졸렬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이 작품에서 그는 '증거를 남기지 않는 치밀한 살인마'로 분하여 출연하는데요,
살인마로서의 섬뜩함, 악랄함, 치밀함, 당위성 같은건 티끌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고,
그의 선택이 매우 잘못된 것이었다는 점만 확실하게 증명합니다.
그의 깨끗한 얼굴과 이미지는 살인마에 어울리지 않았죠.

배우로서 쉽게 얻기 힘든 영웅 이미지를 왜 이딴 영화에 소모했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또한 이 영화에서 그는 매우 촌스럽고 노쇠한 모습을 보여, 보는 이를 당황스럽게 만듭니다.
여러 면에서 1년전 출연했던 매트릭스와 비교가 많이 되는데
맞지 않는 캐릭터도 그렇고 갑작스러운 미모의 실종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었죠.
10년 후의 영화속 모습보다 이 영화에서의 모습이 더 나이 들어보일 지경입니다.
(가족이 조폭에게 인질로 잡혀 어쩔 수 없이 출연한건 아닐까 의심이 들만큼 모든 면에서 엉망진창인 동시에 배우 상태도 시망)

영화는 당연하게도 흥행 실패와 더불어 평단의 혹평을 얻어맞았으며
키아누 리브스는 배우로서의 명성에 커다란 흠집을 내고 한동안 B급 영화를 전전하다
매트릭스2편을 통해 어렵사리 주연급 배우의 자리로 돌아옵니다.

키아누 리브스에 대해서 좀 더 얘기해보자면..

기실 키아누 리브스는 상당히 많은 작품을 했음에도 명배우로 꼽기에는 다소 어려운 배우입니다.
연기력이 출중하지 않은 점에 더불어 작품 고르는 눈이 정말 나쁘기 때문입니다.

리버 피닉스와 함께 출연했던 '아이다호'를 통해
젊은이들의 우상으로 강렬한 이미지를 심어줬던 그는,
차기작으로 뜬금없이 코미디물 '액설런트 어드벤쳐'에 출연합니다.
영화는 대박이라 하기엔 조금 아쉬운 흥행에 그저그런 평을 얻었으나,
꽃미남 이미지를 잃었다는 점에서 잘못된 선택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후 '스피드'를 통해 액션 히어로의 이미지를 얻어 탑배우 반열에 들어서지만
차기작들로 '구름위의 산책', '코드명j', '체인 리액션' 등등 씹망작에 연달아 출연하여
어렵게 얻은 이미지를 다시 깍아먹습니다.

한동안 침체일로를 걷다 매트릭스를 통해 부활하였으나 후속작 와쳐로 이미지를 산산조각냈고, (이게 정말 치명상)
매트릭스2, 3편에 출연하여 반짝 올라온 이후에는 이렇다할 대표작도 없이 잠잠합니다.
'콘스탄틴'이나 '지구가 멈추는 날' 정도가 대중의 관심을 끌었으나, 이 작품들도 평은 좋지 않았습니다.

개인적으로 키아누 리브스는 SF히어로, 액션 히어로의 이미지가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많은 필모그래피 중에서 히트했던 작품들은 하나같이 그와 같은 이미지였지요.
키아누 리브스 본인은 배우로서 한가지 이미지에 갖히는게 싫어 이런저런 시도를 많이 해보는 것이라고는 하나,
다양한 연기 스펙트럼이란건 출중한 연기력이 뒷받침될때의 이야기이고, 안타깝게도 키아누 리브스의 경우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봅니다.
몇번이나 이미지 탈출을 시도하다 SF히어로로 돌아와 재기를 경험했던 그였기에 이제는 본인 스스로 이 사실을 깨달았을거라 생각합니다.

(영화 스피드 직후의 인터뷰를 보면 액션 영화가 너무 힘들어서 다시는 액션 영화에 출연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 대목이 나옵니다.
아마 이 부분도 클겁니다.
액션으로 대박 → 액션이 싫어서 다른거 해봤는데 자꾸 실패 → 울며 겨자먹기로 액션영화 선택 → 대박. 배우 심정은 복잡하겠죠.)

저는 그에게, 배우로서 풍부한 필모그래피와 다양한 연기 스펙트럼에 대한 강박관념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자기가 가장 잘하는 한가지 이미지, 한가지 스펙트럼만으로 얼마든지 훌륭한 배우로 기억될 수 있습니다. (ex : 노년의 말론 브란도)

그는 내년에 일본 애니메이션 원작의 '아키라'에 출연예정입니다.
본인에게 가장 잘 맞는 SF히어로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 기대됩니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28 16:08: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