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각적인 측면에서 시스테마틱하게 한 번 분석해 보았습니다.

네이밍 센스: 여러분은 '밀크밥버거' 라는 단어를 보면 무슨 생각이 드나요? 제 머릿속에 처음 떠오른 생각은 도대체 밥버거에 뭘 쑤셔넣으면 밀크밥버거가 될까? 였습니다. 아마도 한솥으로 향하던 제 발길을 돌린 건 이런 불쾌한 네이밍에서 오는 호기심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듭니다. 우유에 만 밥이라는 것은 군생활 시절 행보관이 키우던 멍뭉이 말고 아무도 좋아하지 않을 것 같았거든요. 요약하자면 밥버거에 우유가 들어간 메뉴는 전혀 없습니다. 마치 애플이 사과 판매 회사가 아닌 거랑 좀 비슷한 느낌이에요. 이 가게이름이 왜 밀크밥버거인지가 바로 다음 세계7대 난제 중에 들어가게 될 것 같습니다.

위치선정: 일단 주변이 원룸촌에 아파트단지 투성이고, 초등학교 중학교 대학교 다 있으니 유동인구적인 측면에서는 상당히 괜찮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변 경쟁자들이 만만치 않습니다. 점주분은 잘 모르셨겠지만 이 근처 상권은 새로운 진입자에게 거의 형사재판장이거든요. 일단 법후 자취생들의 대법관 '법후 한솥'이 있습니다. 다른 한솥 체인점보다 월등히 많은 치킨마요 토핑을 주무기로 시공의 폭풍마냥 근처 행인들을 빨아들이죠. 그 외에도 혼밥계의 떠오르는 샛별 우이동 멸치국수가 바로 골목 하나 돌아가면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해 보면 진짜로 우유에 밥을 말아주는 신박한 방법이 아닌 이상 단골 모으기가 힘들어 보입니다.

생산 속도: 밥버거 하나 나오는데 20분 걸립니다. 제가 처음 갔을 때는 구석에 손님 하나밖에 없어서 5분컷이 될 거라 기대했는데, 전혀 아니었습니다. 먼저 온 손님은 밥버거를 기다리다 못해 지쳐 마치 보릿고개를 맞은 북한어린이같은 눈빛을 한 채로 저를 쳐다보았고, 뭔가가 잘못되었음을 느낀 저는 재빨리 발걸음을 돌리려 했지만 그 시점에 터진 주인 아주머니의 '어서 오세요!!' 샤우팅에 그만 다리가 굳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후 배고픈 함경북도 주민은 두 명으로 늘어났습니다.

서비스: 밥버거는 정말 오랫동안 나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보급이 끊긴 참호 속 독일군 병사의 심정이 되어 마실 물이라도 찾아보려 했지만, 정수기는 있되 물컵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것은 또 무슨 하나의 창의적인 퀘스트인가 고민하다가 그냥 정상적인 방법으로 풀기로 결심하고 아주머니에게 물컵 보급을 요청했습니다. 아주머니가 주신 것은 락x락 반찬통이었는데요, 이곳에서는 일반적인 상식이 통하지 않는구나, 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정수기 물을 락앤락 반찬통으로 받고 있으니 새삼 물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더군요. 마침 새로운 손님이 또 들어왔는데, 그분은 락앤락통에 물을 받고 있는 저와 먼저 오신 분의 애절한 눈빛에 잠시 당황하셨지만 곧 씩씩하게 주문하는 곳으로 걸어갔습니다. 그 분에게 애도를 표합니다.

맛: 방망이 깎는 노인은 말했습니다. 재촉한다고 안 될 일이 되는 게 아니라고. 저는 밥버거를 천천히 깎는 아주머니의 손놀림을 바라보며 '오래 걸리면 어때! 장인의 손으로 정성들여 만든 방망이? 인데! 라며 자기합리화를 시작했더랬죠. 내가 햄치즈밥버거를 주문한 건지 프랑스 출장뷔페 배달을 주문한 건지 고민될 정도로 오랜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밥버거가 나왔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정말 방망이 같은 맛이더군요. 기대한 사람의 통수를 시원하게 후려칩니다. 씹는 동안에는 참치와 마요네즈와 밥알과 햄과 김치가 무슨 원수라도 졌는지 혀 위에서 난투극을 벌이며 지옥도를 연출하다가, 삼키고 나면 거대한 허무가 찾아옵니다. 한 편의 대서사시 같은 맛입니다. 맞은 편에 앉은 사람도 대충 비슷한 의견인 것 같더군요. 반쯤 남기고 간 것을 보면.
* 친구들은 컵밥 종류는 꽤 맛있다고 합니다.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친절도: 아주머니는 정말 친절하십니다. 손님을 반갑게 맞아 주시고 나갈 때도 배웅해 주십니다.

총평: 유저가 도중에 접어버린 요식업체 운영 게임의 실사판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6-08 19:3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