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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대학원생이다. 하루 두 끼 점심, 저녁 밥먹는것과, 어쩌다 뜻밖의 쾌변하는 것 이외에는 이렇다 할 삶의 낙이 없는 비루한 생활을 수 년째 반복하고 있다.
이렇게 장문의 리뷰를 작성하기로 결심한 이유는 교수님 메일소리 환청에 시달리며 사는 하루살이같은 삶을 되돌아 보면서 내 삶에서 진정 가치가 있는 것에 대한 소회를 문득 글로 옮겨적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누구는 '뭐야 이녀석은' 하고 짧게 읊조리고 뒤로가기 버튼을 누를 것이고, 또 한명의 잉여로운 고파서는 마지못해 스크롤을 더 내려보기로 결심하겠지.
스티브 잡스는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며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오늘이 내 삶의 마지막 날이라고 해도 나는 이 일을 할 것인가?'
인생에서 도망치기를 반복해서 결국 대학원까지 온 이 상황에서 저런 질문은 오히려 사치스럽기까지 하다. 나는 좋든 싫든 어쨌거나 오늘의 삶을 살아내야만 한다.
그래서 나는 잡스의 질문 대신 매일 내 자신에게 오늘 내 삶에 있어 한가지 묵직한 물음을 던진다.
'오늘 뭐 먹지?'
이공계 캠퍼스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것 중 하나를 꼽자면 먹을만한 밥집을 들 수 있겠다.
불과 몇년 전 까지만 해도 백반한 끼 든든하게 먹을 수 있는 밥집 몇 개가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돈부리 광풍이 몰아친 이후로 백반집은 자취를 감추고 각양각색의 돈까스집만 내 전셋방 곰팡이마냥 퍼져나가는 작금의 현실.
미소야, 아비꼬, 탄, 사보텐, 정다래, 행운돈까스, LA돈까스, 코케코코, 매콤돈까스 & 칡냉면 (사장님 살아계실까?)...
참살이길에서 돈까스집 춘추전국시대가 펼쳐지는 동안 캠퍼스 내에서도 가히 엄청난 위치 프리미엄을 등에 업고
장사를 하는 곳이 있었으니 자연계 캠퍼스를 거니는 자를 붙잡고 물어보아도 이름을 모르는자가 없는 '진성미 보쌈'집이다.
길건너는 병원이 있고 수천명의 인원이 상주하는 자연계 캠퍼스 내에 자리잡은 진성미 가게터는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장사가 안될래야 안될수가 없는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다.
근데 망해나갔다. 사실 진성미보쌈 주인은 한 번 바뀌었는데, 예전 주인은 위의 이유를 들어 꽤 많은 액수의 권리금을 받고 도망치듯 가계를 넘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가계를 넘겨받는 새 주인은 그처 적당히 끓인 김치찌개나 팔다가, 매출이 썩 신통치 않았는지 망하는 음식집이 최후의 발악을 하는
메뉴 확장을 하기에 이른다. 소 내장탕까지 팔기 시작한 것이다.
행여나 지하에 있어서 손님이 못보고 지나칠까봐 큼지막히 입구에 써붙이기까지 했지만.. 씨뻘겋게 쓰여진 소내장탕 글씨는 그 자체만으로도 누린내가 나는듯 한 착각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결국 망했다.
출근길에 지나치면서 본 진성미보쌈 주방 철거 장면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누렇다 못해 갈색으로 찌든 후드와 싱크대를 들어낼 때는 내 속에서 야릇한 쾌감마저 들게 했다.
그렇게 가게자리가 정리된 후 멀지 않아 새 가게가 간판을 내걸었다. '한사우 손두부'
나는 고독한 미식가 모드로 빙의하여 입구 근처 적절한 자리에 자리를 잡고 형식적으로 메뉴판을 슥 훑어본 후 나즈막한 목소리로 육개장을 주문했다. 쓱 둘러보니 새로 들여온 가구들과 채 빠지지 않은 인테리어 공사 냄새가 잘 부탁한다는 듯 나를 맞이했다.
필자는 육개장에 대하여 꽤 높은 스탠다드를 갖고 있는데, 안암 최고의 육개장은 '바다가 육지라면' (구 천지명품한우)의 육개장을 최고로 쳤었다. 천지명품한우의 소고기와 바다회를 파는 이해할 수 없는 셀링포인트는 기회가 되면 따로 올리도록 할 예정이다. (두 음식의 부조화를 상징하듯 가게 창문 주위에 주렁주렁 붙여진 파란색 LED 눈뽕은 그 자체로 극혐이며 터진 침샘도 말라붙게 한다)
주문한 지 얼만큼 시간이 지났을까.. 기다리면서 허기를 달래기 위한 양배추 샐러드를 거의 다 먹어갈때 즈음 큼지막한 그릇에 담겨 나온 육개장은 비주얼 자체만으로는 합격점이었다.
육개장을 한숟갈 떠먹은 후 내 기대는 점차 실망으로 변해갔다.
베이스가 없이 어택만 있는 텅 빈 국물 맛,, 육개장 국물맛의 스티브 제라드 격인 토란은 찾아볼 수 없었고
고사리와 숙주나물, 대파 몇 개만이 애처롭게 둥둥 떠다녔다.
겨우 밥 한공기를 비우고 나서 나는 검지와 중지 사이에 카드를 끼어 내밀고 젠틀하게 계산한 다음 음식점 계단을 빠져나왔다.
'먹을만한 국물 한 그릇' .. 정말로 그렇게 어려운 것일까?
나는 쓸쓸히 연구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6-01 19: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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