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들이 온다
부두교 신앙에서 등장하는 좀비는 주술로써 죽은 사람을 다시 움직이는 노예로 부리는 것입니다. 이후 할리우드 영화의 소재가 되어 인육을 탐하는 괴물로 굳어진 좀비는 꾸준히 공포의 대상이 되어왔습니다. 조지 로메로 감독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잭 스나이더 감독의 ‘새벽의 저주’, 대니 보일 감독의 ‘28일 후’ 등의 작품은 전 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한 바 있는 유명한 작품들입니다.
대한민국 작품 중에서는 영화 ‘부산행’, 드라마 ‘킹덤’ 등이 좀비를 다뤄 많은 관심과 호응을 받았습니다. 영화나 드라마뿐만 아니라 게임, 소설, 음악, 심지어 철학에도 등장하는 좀비는 단순한 캐릭터가 아니라 심오한 사유의 주제가 되기도 합니다. 위기 상황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본성, 자아를 잃고 전체주의에 사로잡힌 현대인 등에 대한 고민은 종종 좀비에 비유되어 깊은 고찰과 고뇌를 불러오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왜 좀비에 두려움을 느낄까요? 아마 여러 이유 중에서도 죽어도 죽지 않는다는 끈질김이 대표적일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 스포츠에서 좀비라는 별명을 가진 선수나 구단은 각종 악재에도 끝끝내 굴하지 않고 상대에 맞서는 집념을 소유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번 글의 주인공 역시 포기하지 않고 저돌적인 자세로 경기에 임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바로 ‘The Korean Zombie’ 정찬성입니다.


2. 파이터의 길로 나아가다
포항에서 태어난 정찬성은 부끄럼을 많이 타는 성격의 소년이었습니다. 자신감과 용기를 가지기 위해 합기도를 배우면서 격투기와 처음 인연을 맺은 정찬성은 이후 킥복싱과 주짓수를 익힙니다. 결국, JTBC의 전신인 Q채널에서 방영한 ‘리얼격투 스트리트파이터’로 종합격투기 경력을 시작한 정찬성은 얼마 후 일본에 진출합니다. 당시 일본엔 K-1 , PRIDE 등 다양한 격투기 단체가 인기를 끌고 있었습니다.
정찬성은 UFC에도 진출한 바 있는 베테랑 오미가와 미치히로, 젊은 패기의 신성 이시와타리 신타로 등을 꺾으며 승승장구합니다. 팬들은 공격적인 운영으로 상대를 거칠게 몰아붙이는 그에게 많은 응원과 관심을 보내기 시작합니다. 아쉬운 반칙패에도 불구하고 태국 챔피언 출신 패종슥 룩프라밧을 실신시킨 정찬성의 모습을 본 미국의 ZUFFA는 계약을 제의합니다. 당시 최고의 경량급 선수들이 활동하던 WEC에 발을 디디게 된 것입니다.
WEC 데뷔전에서 ‘Bad Boy’ 레오나르도 가르시아와 난타전을 벌이며 논란의 판정패를 당한 정찬성은 미국 팬들에게 자신을 각인시킵니다. 하지만 정찬성은 이어진 조지 루프와의 대결에서 하이킥을 맞고 KO패를 당하며 주춤하게 됩니다. 선수 생활을 그만둘 생각도 하며 많은 고민을 한 결과 지나치게 공격 일변도였던 플레이 스타일을 가다듬은 정찬성은 WEC가 통합된 세계 최고의 격투기 단체 UFC에 입성합니다.


3.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리다
브라질리언 주짓수를 전파하고자 한 호이스 그레이시에 의해 시작된 UFC는 명실상부 가장 거대한 격투기 단체로 성장합니다. 데이나 화이트 사장의 혁신적인 경영에 힘입어 비주류였던 격투기를 양지로 끌어 올리는 데 성공한 UFC는 전 세계 격투기 선수들이 선망하는 무대였습니다. UFC는 랜디 커투어, 프랭크 샴락 등의 전설적인 선수들이 펼친 화끈한 승부를 통해 수많은 격투기 팬을 매료시켰습니다.
UFC 데뷔전 상대는 WEC 데뷔전에서도 만났던 가르시아였습니다. 패배를 설욕하고자 각오를 다진 정찬성은 이전 승부보다 한층 안정적으로 접근합니다. 우세를 이어가던 정찬성은 찰나의 빈틈을 놓치지 않고 트위스터 기술로 서브미션승을 거둡니다. 고난도 기술인 트위스터로 승리를 거둔 것은 UFC 역사상 처음이었습니다. 이 승리로 미국의 격투기 팬들의 이목은 정찬성에게 집중되기 시작합니다.
두 번째 경기는 더욱 강렬했습니다. 페더급 타이틀전을 치를 정도의 실력자 마크 호미닉을 경기 시작 후 단 7초 만에 KO 시켜버린 것입니다. 상대의 섣부른 공격을 피해낸 후 강력한 오른손 주먹을 적중시킨 예술적인 승리였습니다. 7초는 당시 UFC 역대 최단시간 KO 타이기록이었습니다. 연이어 강렬한 승리를 거둔 정찬성은 이내 유력한 타이틀 도전자로 거명되기 시작합니다.


4. 챔피언 벨트를 향한 마지막 관문
페더급 챔피언 도전자 결정전의 상대로 나타난 이는 ‘The Diamond’ 더스틴 포이리에였습니다. 강력한 펀치를 자랑하는 포이리에는 훗날 라이트급 잠정 챔피언에 오를 정도로 훌륭한 실력을 갖춘 상대였습니다. 타격뿐만 아니라 그래플링에도 능한 올라운더인 포이리에는 챔피언이 되기 위해선 반드시 꺾어야 할 장애물이었습니다. 정찬성은 일생일대의 기회를 거머쥐고자 결의를 다집니다.
메인 이벤트로 펼쳐진 두 투사의 승부는 일진일퇴를 반복했습니다. 정찬성과 포이리에는 서로의 주먹을 두려워하지 않고 거침없이 부딪쳤고 1라운드 만에 포이리에의 얼굴에 출혈이 일어나기까지 합니다. 점점 밀어붙이던 정찬성은 4라운드 강력한 니킥을 성공시킵니다. 휘청거리는 와중에도 테이크다운을 시도한 포이리에는 예술적인 다스 초크 그립 반격에 무너집니다. 한국인 최초의 UFC 챔피언 도전자가 등장한 순간이었습니다.
정찬성은 경기 후 당시 챔피언이었던 조제 알도에게 호기로운 도전장을 내밉니다. 화이트 사장이 직접 보너스 10만 달러를 지급할 정도로 전문가와 팬들의 사랑을 독차지한 그를 하늘이 시기했던 걸까요? 경기 전 이미 안고 있었던 어깨 부상은 절대 내버려 둘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빛나는 벨트를 앞에 두고 아쉽게도 정찬성은 결국 수술을 결정하며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를 선택합니다.


5. 무적의 챔피언에 도전하다
부상 치료를 마무리한 후 복귀전을 준비하던 정찬성에게 아이러니하게도 부상이 도움을 줍니다. 당시 챔피언 도전자였던 화려한 발차기의 소유자 ‘Showtime’ 앤소니 페티스가 무릎 부상으로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마침내 정찬성은 한국인 최초로 UFC 타이틀전을 치르게 됩니다. 그를 기다리고 있던 상대는 여전히 왕좌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던 역대 최고의 페더급 선수 알도였습니다.
알도는 불우한 가정형편을 극복한 입지전적인 인물이었습니다. WEC에 진출하여 페더급 챔피언에 등극한 알도는 UFC로 통합되고 난 이후에도 무려 8년간 무패 행진을 이어가던 전설이었습니다. 정교한 타격, 유연한 그라운드 실력, 격투기에만 집중하는 금욕적인 자세까지 모두 갖춘 완전체 파이터였던 그를 꺾는 것은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정찬성은 평생 그래왔던 것처럼 이번에도 모든 것을 걸고 맞섭니다.
고국인 브라질에서 열화 같은 함성을 뒤에 엎은 알도와 부딪친 정찬성은 초반 고전합니다. 하지만 이후 조금씩 경기 페이스를 가져오며 선전하던 정찬성은 악재에 가로막힙니다. 이미 한 번 다쳤던 어깨가 4라운드 공방전 중 탈골되고 만 것입니다. 어떻게든 경기를 이어나가려 했지만, 전력으로 상대해도 버거운 챔피언에겐 먹잇감을 던져준 거나 다름없었습니다. 결국, 부상 부위를 공략한 알도에게 KO 당하며 정찬성의 위대한 도전은 미완으로 끝납니다.


6. 후일담 및 근황
부상으로 또다시 장기간 결장하게 된 정찬성은 공백기 동안 병역을 수행합니다. 2017년 불굴의 의지로 다시 옥타곤에 돌아온 정찬성은 복귀전에서 승리하며 화려하게 재도약합니다. 비록 경기 시간을 단 1초 남겨두고 패배를 당하거나 십자인대 부상을 겪는 등의 우여곡절을 겪었음에도 포기하지 않은 정찬성은 12월 21일 부산에서 열릴 현재 페더급 랭킹 2위 브라이언 오르테가와의 승부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

P.S.
격투기는 처음 다뤄보는 주제라 재밌게 다루었는지 걱정입니다. 부족한 글솜씨에 양해를 구합니다. 다음 글은 메이저리그의 캔자스시티 로열스에 대해서 써보겠습니다. 기대해 주세요!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6-26 05:1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