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설의 종말과 영웅의 등장
2008년 1월 7일, 현대 유니콘스는 역사 속으로 사라집니다. 원년 팀 삼미 슈퍼스타즈로부터 청보 핀토스와 태평양 돌핀스를 거쳐 4번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일구어낸 한국 프로야구의 강호는 모기업의 재정난으로 인한 지원 중단과 연고지 이전으로 인한 흥행 실패를 이겨내지 못했습니다.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선수단과 프런트는 하루아침에 젊음과 열정을 바쳤던 팀을 잃어버립니다.
한국야구위원회 KBO는 리그의 규모를 유지하기 위해 여러 기업과 협상을 벌였지만, 선뜻 야구팀 창단을 결정한 기업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한국 프로야구 전체가 절망하던 바로 그때, 투자회사 센테니얼 인베스트먼트가 나타납니다. 사업가 이장석은 명명권 판매 및 선진 경영 등 한국 프로야구에는 희소한 개념들을 주창하며 적극적으로 인수에 참여합니다. 히어로즈 탄생의 서막이 오른 것입니다.
2008년 3월 24일, 히어로즈는 역사에 새로이 등장합니다. 현대의 인적 자원들을 계승해 신생팀으로 다시 태어난 히어로즈는 그토록 원하던 서울 연고를 얻어냅니다. 목동 야구장을 새로운 홈구장으로 삼은 히어로즈는 우리담배에게 명명권을 판매해 우리 히어로즈라는 이름을 얻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호기로운 새 출발을 시작한 히어로즈였지만 그들의 앞길엔 가시밭길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2. 부끄러운 거래
히어로즈는 거액의 KBO 가입금 납부 문제를 두고 KBO와 마찰을 빚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기업 이미지 훼손을 우려한 우리담배가 계약 중도 해지를 결정하자 히어로즈의 재정난은 극심해집니다. 다행히 넥센타이어와 계약에 성공하며 넥센 히어로즈라는 새 이름을 얻고 급한 불은 껐지만, 어려운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자신 있게 팀 운영을 낙관했던 이장석은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현금 트레이드를 꺼내 듭니다.
이택근, 이현승, 장원삼, 마일영, 황재균, 송신영 등 현대 시절부터 팀을 지켜온 선수들이 돈과 맞바꿔집니다. 물론 트레이드 상대로 팀에 입단한 선수들도 존재했지만, 당시 명성과 기대치를 생각했을 때 수억 원 상당의 금액이 오고 갔음은 명백했습니다. KBO는 리그 균형의 붕괴를 가져올 트레이드에 강한 유감을 표명했지만, 규정상으로는 아무 문제 없는 트레이드를 막을 순 없었습니다.
2018년, 현금 트레이드들의 실상이 폭로됩니다. 여태까지 선수들의 대가로 받아온 금액을 축소해서 발표해 왔으며 숨겨진 현금들을 이장석 개인이 횡령해 왔다는 것입니다. 총 131억 5천만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액수는 탐욕스러운 사업가와 전력 향상을 위해 불의를 행한 타 구단들의 합작품이었습니다. KBO는 이장석을 영구 퇴출했으며 유일하게 현금 트레이드에 참여하지 않은 SK 와이번스를 제외한 모든 구단에 벌금을 부과하며 사태를 일단락합니다.


3. 악전고투의 지도자들
어수선한 분위기에서도 팀을 이끌던 감독들은 최선을 다합니다. 히어로즈의 초대 감독인 이광환 감독은 원년 우승팀 OB 베어스의 타격코치로 프로야구에 발을 내디뎠던 경험 많은 지도자였습니다. 미국에서 선진 야구를 배운 그는 자율야구와 스타시스템 등의 철학을 앞세워 1994년 LG 트윈스의 신바람 야구와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끈 바 있었습니다. 하지만 열악한 사정이었던 히어로즈는 2008년 창단 첫해 7위에 그쳤으며 이광환 감독은 경질됩니다.
2대 감독으로 부임한 김시진 감독은 현대의 마지막 감독이었습니다. 선수 시절 해태 타이거즈의 선동열, 롯데 자이언츠의 최동원에 비견되는 삼성 라이온즈의 에이스로 활약했던 그는 훌륭한 인품의 소유자로 많은 팬의 지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명선수는 명감독이 되기 어렵다는 스포츠계의 격언처럼 감독으로서 그다지 유능하지 않았던 그가 여전히 어려운 사정이었던 히어로즈의 성적을 끌어올리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2013년 3대 감독으로 부임한 염경엽 감독은 오랫동안 이어진 히어로즈의 수난사를 종료시킨 명장입니다. 세밀한 분석, 기발한 작전 등을 앞세워 부임 첫해 히어로즈 역사상 처음으로 팀을 포스트시즌에 진출시킨 것입니다. 이후 2016까지 감독으로 재직하면서 매해 히어로즈를 가을야구로 이끈 염경엽 감독은 영웅 군단을 강팀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이바지한 일등공신으로 길이 남을 것입니다.


4. 영웅, 만개하다
창단 이후 하위권을 전전하던 암흑기부터 가을야구 단골손님으로 자리 잡은 최근까지 히어로즈 팬들은 지치지 않고 응원을 보냈습니다. 그 응원에 보답하기 위해 팀을 거쳐 간 수많은 선수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히어로즈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수많은 영웅 중에 단연 빛나는, DC 코믹스의 슈퍼맨이자 마블 코믹스의 캡틴 아메리카라고 할 수 있는 이는 프로야구 대표 강타자 박병호 선수일 것입니다.
고교야구 최초로 4연타석 홈런을 때려낼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가졌던 박병호는 LG 트윈스에서 프로선수로 데뷔하지만, 잠재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1군과 2군을 오가며 만년 유망주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게 됩니다. 2011년 현금 트레이드 대가로 히어로즈에 입단한 박병호에게 당시 감독이었던 김시진 감독은 전폭적인 신뢰를 보냅니다. 항상 큰 부담감에 시달리던 박병호는 심리적인 안정을 얻었고 자신의 실력을 꽃피웁니다.
2011년을 13홈런과 장타율 0.522라는 소기의 성과로 마무리한 박병호는 다음 시즌부터 본격적인 질주를 시작합니다. 4년 연속 홈런왕과 타점왕을 차지하며 2012년, 2013년 2년 연속 MVP에 선정된 박병호는 2016년 꿈의 무대인 메이저리그의 미네소타 트윈스에 입단하기까지 합니다. 비록 부진과 부상 끝에 2년 만에 아쉽게 마무리된 미국 생활이었지만 2018년 다시 복귀한 히어로즈에서 43홈런을 때려내며 다시금 부활에 성공합니다.


5. 최강과의 한 끗 차이 승부
히어로즈의 역사상 가장 우승에 근접했던 순간은 2014년일 것입니다. 삼국지의 천재 모사이자 명재상인 제갈량에게 빗대어 ‘염갈량’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 염경엽 감독의 지휘 아래 박병호는 2003년 이승엽과 심정수 이후 최초로 50홈런을 돌파하며 괴력을 과시합니다. 최초로 200안타를 때려낸 MVP 서건창, 유격수 최초 40홈런을 기록한 강정호, 20승을 거둔 에이스 앤디 벤 헤켄 등의 활약이 더해지면서 히어로즈는 리그 2위를 기록합니다.
플레이오프에서 만난 LG를 3승 1패로 제압한 히어로즈의 영웅들 앞을 가로막은 상대는 삼성이었습니다. 류중일 감독의 지휘로 통합 3연패를 기록 중이었던 최강팀 삼성은 윤성환, 릭 밴덴헐크, 안지만, 임창용 등이 버티고 있던 막강한 투수진과 이승엽, 야마이코 나바로, 최형우, 김상수 등 화려한 타선을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팀 평균자책점 2위와 팀 타율 1위를 거머쥔 강팀에게 히어로즈는 패기 있게 도전장을 내밉니다.
대망의 한국시리즈, 히어로즈는 에이스 벤 헤켄의 역투에 힘입어 1차전과 4차전에 승리합니다. 하지만 첫 한국시리즈를 치르는 히어로즈 선수들의 경험 부족은 활화산 같던 타선의 침묵과 수비진의 결정적인 실책으로 나타납니다. 반면 이미 풍부한 경험이 있던 삼성 선수들은 노련한 모습으로 호수비와 결승타를 만들어냅니다. 결국, 6차전 모든 부문에서 최악의 모습을 보이고 10점 차 대패를 거두며 영웅 군단의 도전은 아쉽게 마무리됩니다.


6. 후일담 및 근황
2016년 염경엽 감독의 사퇴와 2018년 넥센타이어의 후원 종료로 히어로즈 역사에 새로운 장이 열립니다. 4대 감독으로 장정석 감독을 선임한 히어로즈는 키움증권과의 계약으로 키움 히어로즈로 거듭납니다. 2017년에 7위를 기록하며 5년 만의 가을야구 탈락이라는 극심한 부진을 겪었지만 2018년 구단 역대 최고의 선수 박병호의 복귀, ‘바람의 아들’로 불렸던 프로야구의 전설인 아버지 이종범에 못지않게 강렬했던 이정후의 데뷔 등의 호재로 다시 가을야구 진출에 성공합니다. 히어로즈는 2019년 현재 2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우승을 향한 영웅들의 도전은 절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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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이번 글은 여러 학우께서 바라시던 히어로즈를 다뤄 봤습니다. 아직 우승을 차지한 바 없는 팀이라 전체적인 역사를 다룬 색다른 형식의 글을 썼습니다. 재밌게 읽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다음 글은 K리그의 경남 FC를 다루려고 합니다. 기대해 주세요!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6-01 17:1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