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는 11일부터 13일까지 본교생으로부터 각자의 사연이 깃든 노래를 제보받았다. 그 중 5명의 사연을 선정해 지면에서 소개한다.





14학번 A ‘청춘 – 하비누아주’



“큰 다리를 건너는 그림자를 봤어

그 언젠가 어둡고 황량한 길에서

이 적막을 지나면 어디든 닿을까

달리던 커다랗고 거친 나의 슬픔을”



‘청춘’이라는 단어에는 단지 ‘靑春’이라는 말 그대로의 의미만 담겨있지 않다는 느낌을 자주 받아요. 어느 순간 저를 돌아보니 ‘목표’에 대한 의심 없이 ‘달려야만 한다’는 생각만 하고 있더라고요. 너무나 많은 것들을 포기하면서도 말이죠.

20대라는 문을 열었을 때 마주한 청춘의 찬란한 겉모습과 지금 나 사이의 괴리가 커다란 짐처럼 남겨진 느낌이에요. 과제에 치이고, 학점에 치이고, 사람에 치이고, 너무나 많은 만남과 이별에 치이고 부딪히는 나, 아니 우리의 모습만 보더라도 청춘의 이면은 너무나 쉽게 그 모습을 드러내고 마는 것 같아요.

수많은 '힐링 음악'들이 저의 귀로 들어오곤 했어요. 초반에는 위로라는 한 마디만으로 행복했지만, ‘힐링’이 유행으로 자리 잡고 나니 같은 이야기가 반복된다는 느낌을 받았죠. 잘했다, 수고했다, 그런 말만 계속되니 어느샌가 귀를 닫아버린 것 같아요.

하지만, 왠지 모르게 저는 이 노래에 다시 귀를 열었어요. 어딘가 살포시 기댈 수 있는 느낌이었달까요. 호소력 짙은 목소리와 차분하게 전달되는 곡의 이야기. 가사를 곱씹으며, 정말 오랜만에 '우리 이야기를 하고 싶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도 하루에 몇 번씩은 꼭 듣게 돼요. 화려하지 않지만 분명 매력적이고, 평범한 듯하지만 절대 평범하지 않은 음악이죠. 기회가 된다면, 이 노래가 실려 있는 앨범 전체를 꼭 들어보시길 바라요. 분명 '진짜 위로'가 될 거에요.



14학번 E ‘하드코어 인생아 – 옥상달빛’

“뒷걸음질만 치다가 결국 벼랑 끝으로

그래도 인생은 반짝반짝 하는 저기 저 별님 같은

두근대는 내 심장 초인종 같은걸, 인생아”



저는 자존심이 꽤나 강한 사람이었어요. 항상 밝고 쾌활한 사람이고 싶었고요. 그래서일까요. 주위 친구들에게 힘든 이야기를 털어놓지 못했어요. 부모님에게도 언제나 괜찮다, 잘 지내고 있다는 말만 했고요. 현실은 아무 것도 한 것 없는, 할 것도 없는 상황이었는데 말이죠.

위로가 싫었어요. 수고했다는 말도요. 나 스스로 해결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바뀌는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어요. 친한 친구 한 명이 ‘수고했어 오늘도’라는 곡으로 이 가수를 소개해서인지, 첫인상은 썩 좋지 않았죠. 그러던 중 이 가수가 부른 곡을 살펴보며 눈에 들어온 한 곡, 내 상황에 그나마 맞는 곡이라 생각해서 들었던 곡은 달랐어요. 완전히 빠져버렸죠.

한 걸음 한 걸음을 확신에 차서 걸어가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그냥 살고 저냥 살며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는 경우도 많겠죠. 나만 힘든 것이 아니란 걸, 나라서 힘든 것이 아니란 걸 알게 되니 보이더라고요. 모두가 힘들지만 그래도 살아가는구나. 두근대는 순간, 반짝이는 순간을 기다리는구나. 축 처진 어깨 위로 별 하나를 띄우고 사는구나. 힘들다고 말하는 건 당연한 일이구나, 하는 것들을요.

이 노래는 수많은 위로보다 제게 힘이 돼준 솔직한 고백이에요. 이제는 힘들다, 지친다는 말을 숨기지 않으려 노력해요. 그게 당연한 거니까, 그러기에 희망을 가질 수 있으니까요. 괜한 자존심을 내려놓으니 오히려 더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 같아요. 하드코어한 인생, 그래도 괜찮으니까요.





11학번 D ‘굿바이 – 이수영’

“많은걸 내가 바라던가요

관심어린 눈빛 따뜻한 한마디 그냥 그거면 됐는데

늘 그대 만나고 돌아온 날은 부은 눈으로 잠드는 걸 아나요”



첫사랑의 기억은 누구나 있겠죠. 저도 순수했던 기억이 있어요. 어린 나이였기에 사람들은 그게 무슨 첫사랑이냐고 할지도 몰라요. 그래도 6년 동안 좋아했는걸요. 다행히 그 친구도 저를 좋아했어요. 사귈 수 있었죠. 다만, 아주 짧은 시간이었어요.

바보 같았어요. 표현하는 방법을 잘 몰랐죠. 그 친구를 만나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고민해서 적어보기도 했지만 막상 그 친구를 만나면 한마디도 못했어요. 얼굴만 빨개졌죠.

결국 오래 가지 못해 헤어졌어요. 헤어짐은 어떻게든 상처를 남겼죠. 어느 날은 언덕길 위에 있는 집에서 학교로 가던 중 그 친구가 올라오고 있는걸 봤어요. 그냥 지나치면 되는걸 너무 당황한 나머지 막 뛰어 내려갔죠. 가속이 붙어 제대로 멈추지도 못하고, 결국 애써 달려 내려왔던 길을 다시 올라갔어요. 그렇게 멍청한 짓도 했던 날들이 어떻게 보면 순수했던 순간이죠.

그러다 이 노래를 듣게 됐어요. 이전부터 계속 듣고 있었던 노래였지만 가사가 완전히 다르게 다가오더라고요. 내 마음을 그대로, 마치 나인 것처럼, 대변하고 있었어요. 그 이후로 이 노래를 엄청 들었어요. 노래를 들으면 눈물이 나오는 건 당연한 일이었죠.

지금도 이 노래를 들을 때면 그 날의 기억이 나요. 너무도 오래돼 빛바래긴 했지만요. 헤어질 때는 너무 미웠던 그 친구,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친구도 저랑 똑같지 않았을까요. 다시는 느껴보지 못할 순수함을 전해줘서 고마운 사람이에요.



10학번 C ‘Thank You – 페퍼톤스’

“한치 앞도 캄캄한 이 먼 길의 어딘가에

소중하게 간직해 둔 널 만날 수 있기를”



군대에 있을 때 이야기에요. 힘든 적응기는 다 지난 상병이었죠. 몸이 그럭저럭 편해질 즈음이 되니 걱정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군대에서는 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한, 하지만 해야만 하는 일들에 대한 생각이었죠.

또래 친구들은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었어요. 저는 군대에 묶여 아무 것도 하지 않는데, 친구들은 저 멀리 앞서가는 느낌이었어요. 불안감이 커지더라고요. 텔레비전 속 뉴스에서도 스펙이니 뭐니 계속 이야기하는데 나는 여기서 뭘 하고 있나, 그런 생각이 자꾸만 커지기 시작했어요.

생일 즈음에 휴가를 나왔어요. 평소 좋아하던 가수를 보기 위해 음악페스티벌에 갔죠. 그러다 이 곡을 듣게 됐어요. 분명 이전에도 들었던 곡이었어요. 곡이 나오자마자 챙겨듣는 가수였으니까요. 하지만 조바심이 커지던 순간에 들었기 때문인지, 라이브로 그 곡을 들었기 때문인지, 알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왔어요. 가사가 나에게 그대로 스며드는 느낌이었죠.

군으로 복귀를 한 후, 가사를 다이어리에 옮겨 적었어요. 부대 안에서 그 곡을 자주 듣지는 못했지만, 다이어리에 적힌 그 글귀를 계속 되새겼죠. 불안함이 찾아올 때마다, 걱정이 커질 때 마다요.

지금도 그때처럼 조바심이 들면 이 노래를 찾아듣곤 해요. 상황이 바뀌어서일까요. 같은 노래를 듣는데도 요즘은 가사의 다른 부분이 마음에 들어와요. 하지만 그 시절의 나처럼 이번에도 잘 이겨낼 수 있을거란 자신감이 생기는 것은 똑같아요. 천천히, 모든 걸 내려놓는다 해도, 언젠가는 소중하게 간직해 둘 무언가를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면서요.





09학번 B ‘Fix Yout Heart – Lasse Lindh’

“How can I fix your heart, if you never drop your guard?

How can I fix your heart, if you never fall apart?”

버스에 앉은 채 한참을 가다보니 이 노래가 나오더군요. 추운 겨울이었어요. 그 날도 술을 먹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죠. 헤어졌거든요.

이해가 안됐어요.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잘 만나던 사람이었는데. 5년을 넘게 만나던 사람이었는데. 더 이상 할 자신이 없대요. 힘들었죠. 충격도 컸어요.

친구 녀석들은 미치도록 힘들던 저를 위로해줬어요. 그렇게 2주간 녀석들과 술만 마셨어요. 술을 마시면 가라앉는 기분이 들었죠. 잊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하지만 깨달았어요. 사실은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요. 집에선 다시 혼자가 된다는 사실을요. 채울 수 없는 공간이, 가슴 속에 그렇게 자리 잡고 있더군요.

그 날은 달랐어요. 버스에 기대 이 노래를 듣던 날요. 순간 내가 위로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 번도 본 적도 없는 가수가 내 상처를 알듯이, 그렇게 노래를 불렀죠. 그 날 만큼은 이 노래의 제목처럼, 이 노래는 나를 고쳤어요. 한 순간에 모든 것을 바꿀 순 없었지만, 분명 이 노래는 그 때의 나를 어루만져줬죠.

아직도 이 노래가 좋아요. 취업이라는 다른 어려움을 마주하고 있지만 그만큼 다른 느낌으로 다가와요. ‘인생노래’라 할 만큼의 임팩트가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다만, 노래로 위로받는다는 것을 처음 알려준 노래에요. 그리고 지금도, 앞으로도 그러겠죠.



강수환, 김범석 기자  news@kukey.com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29 15:24: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