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 간에 흔히 하는 필기나 족보를 공유하는 행위가 불법일 수 있다. 강의를 듣고 학생이 창작한 필기와 족보는 교수의 저작물인 강의나 시험을 갖고 만든 2차 저작물에 해당해, 원저작자의 동의 없이 이루어지는 공유는 저작권법상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특별시 법무행정 서비스의 문정구 변호사는 “강의 내용이나 방식 등에 따라 조금 다를 수 있으나 강의를 듣고 필기나 족보, 녹음이나 영상 등을 창작한 경우라면 타인의 강의라는 저작물을 토대로 2차 저작물을 작성한 것”이라며 “영리 목적 없이 공유만 해도 원 저작자의 동의가 없다면 처벌 대상이 되거나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쉽게 공유하는 족보
문제가 될 수 있는 강의의 족보나 필기 공유는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온라인상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공유에 그치지 않고 매매로도 이어져 문제를 심화시킬 수 있다. 학생들의 수요에 비해 공급은 적지만 5000원 내외로 본교 재학생 커뮤니티 고파스에서 거래가 이뤄지는 모습이 포착되고 있다. ‘강의정보’ 게시판에서 ‘족보’나 ‘필기’로 검색한 결과 2014년 1학기에 올라온 공유 관련 게시물은 104건이었다.

또한, ‘사회학 발달사’ 수업을 들었던 한 학생은 “인터넷 검색을 하다 해당 수업의 필기 전체를 정리해 전체공개로 올려놓은 블로그를 발견해 참고했던 적이 있다”며 “매년 거의 같은 내용으로 수업이 진행되기 때문인지, 2010년에 게시된 글인데도 최근까지 ‘잘 봤다’는 댓글이 달리는 것을 보면 많은 사람이 알고 이용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문제의식 없는 학생들
학생들은 필기나 족보를 공유하는 데에 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강의정보 게시판에 필기를 구하고자 글을 올린 한 고파스 이용자는 ‘족보 거래가 불법인지 알고 있었냐’는 질문에 “몰랐지만 상업적으로 이용하지만 않는다면 크게 문제되지 않을 것 같다”며 “예전에도 필기를 받고 음료수로 사례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이은경(문과대 영문13) 씨는 “조심해야 하는 부분이 있지만 좋은 학점이 요구되는 이 사회에서 보다 더 시험을 잘 보기 위해 족보를 사고파는 학생들을 비판하지는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필기나 족보 공유의 장이 되고 있는 고파스의 관리자들은 필기나 족보 공유에 제재를 가하지 않을 생각이다. 관리자인 박종찬(생명대 식자경00) 씨는 “그동안 계승돼 온 대학문화라는 것이 있는데 갑자기 이를 법적으로 문제 삼는다면 많은 혼란이 있을 것 같다”며 “족보나 필기를 공유하거나 교환하는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고파스에서는 특별한 제재를 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전에 명시하는 교수도 있어
과거 본인이 진행했던 강의에서 쓰인 자료를 공유하는 것을 부정행위로 보고 이를 미리 학생들에게 명시한 교수도 있다. 김배호(경영대 경영학과) 교수는 본인이 강의하는 과목에 대해 “매 학기 강의 첫 시간에 이전학기 강의, 과제 및 시험 자료를 습득하는 행위는 형평성 차원에서 부정행위로 간주한다고 학생들에게 분명히 주지시키고 온라인 서약을 받는다”고 말했다. 또한, 김배호 교수는 “거래가 아닌 단순 공유 행위는 수 차례 직접 목격한 바 있다”며 “강의 자료를 제작자의 동의 없이 사고파는 행위는 반드시 근절돼야 한다”고 말했다.

강의정보 게시판에서 학생들이 족보나 필기를 구했던 과목 중 하나인 ‘채권론’을 가르치는 이동욱(경영대 경영학과) 교수는 “학생들이 공부하는 데에 도움이 전혀 되지 않아 필기나 족보를 거래하는 것에 반대한다”며 “학생들에게 2차 저작물에 대한 개념이 없는 것 같아 학교 차원에서 2차 저작물 표기법 같은 것을 공지하면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조아영 기자likeit@kukey.com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6-05 17:01: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