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위에서 어렵지 않게 외국인을 볼 수 있다. 가깝게는 한국으로 배움을 찾아 오는 유학생으로부터 공장이나 식당에서 일하는 노동자까지, 한국으로 유입되는 이주민의 규모는 커졌으며 그 대상도 다양해졌다. 특히 여성이주자들이 눈에 많이 띈다. 동남아에서 온 여성결혼이민자들, 식당이나 일반 가정에서 가사도우미(보모)로 일하는 소위 조선족 이모님들이 그 예이다. 세계화와 다문화라는 트렌드 속에서 국경을 넘어온 이들을 목격할 수 있다는 사실이 더 이상 특이하지 않다.    

   국제이주 현상 속에서 눈에 띄는 것이 있다. 여성들의 이주양상이 바뀐 것이다. 이전에는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남편을 따라 이주하던 것이, 이제는 독립된 노동자로서 생활전선에서 돈을 벌기 위해 타국으로 이주하는 경향을 보인다. 예를 들어, 이전에는 아버지가 미국으로 이주해서 일자리를 얻고 터를 잡은 후, 한국에 있는 가족을 미국으로 불러서 이주하는 형태였다. 그러나 현재 주위에서 볼 수 있는 여성이주자들은 누구의 아내나 가족의 일환으로 한국에 온 것이 아니라, 본국에 가족들을 남겨 둔 채 혼자 한국행을 택한 이들이다. 한국 남성과 결혼을 위해 본국을 떠난 베트남 여성도 한국 가정에 입주한 조선족 여성도, 이 경우에 해당된다.  

  사센(Saskia Sassen)은 이러한 이주현상을 ‘생존의 여성화’라고 칭한다. 제3세계 여성들이 생존을 위해서, 즉 먹고 살기 위해서 여성노동력이 필요한 제1세계로 이주하는 것이다. 제3세계 여성들을 움직이게 하는 동력은 무엇보다 돈이다. 이전의 이주가 남성 의존적이었다면, 현재의 이주는 독립적이다. 여성들은 스스로 직업을 얻고 돈을 벌기 위해 이주한다. 또한 이들은 번 돈의 많은 부분을 본국의 남겨진 가족들에게 송금한다. 예컨대, 대표적인 송출국인 필리핀의 경우, GDP의 많은 부분을 해외로 진출한 자국민들이 보내주는 송금에 의존하고 있다. 국가발전에 기여하는 이들의 노고를 인정하는 바, 필리핀 정부는 이들에게 “영웅” 칭호도 과감히 부여한다. 1960년대 한국에서 독일로 이주하였던 파독 간호사와 광부의 이야기도 다르지 않다. 당시 이들이 보내오는 송금은 한국경제의 중요한 도움이 되었다. 이들을 한국경제의 역군(役軍)이라 부르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여기서 하나 흥미로운 것은 유입국에서 이주여성들이 일하는 분야이다. 유입국에서 여성노동력이 필요한 분야는 주로 돌봄관련 일에 집중된다. 유입국 여성들의 경제활동 참여가 증가하고 또한  공적 지원을 받는 사회적 돌봄시스템을 유입국이 충분히 보장하지 못함에 따라, 이전에는 유입국 여성들이 희생하며 제공했던 돌봄노동력을 대신할 수요가 증가하게 되는 것이다. 즉, 제1세계의 돌봄공백은 이주여성을 유인하는 동력으로서 작동하게 된다. 이러한 현상, 즉 제1세계의 돌봄영역에 종사하는 제3세계 여성들을 파레나스(Rhacel Salazar Parreñas)는 ‘지구화의 하인들’이라고 표현하였다. 제3세계 출신 이주여성들이 전 세계의 식모로 일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전혀 특별하지 않았던 국제이주는 작금의 여성이주이라는 특별한 현상을 야기하고 있다. 성별분업이 국제분업과 교차하는 지점에서 새로운 이주양상을 보이고 있다. 전형적인 성별분업의 모습은 유지한 채, 제1세계 여성들의 자리를 제3세계 여성들이 대체하고 있다. 이제 제1세계와 제3세계의 관계는 전형적인 성별분업 모드와 무척 닮았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남겨진 아이들’이다. 이주여성이 제1세계의 돌봄노동력을 제공함에 따라, 본국에 남겨진 이주여성의 아이들은 돌봄결핍을 경험한다. 수개월 많게는 수년 동안 엄마의 부재를 경험하는 아이들. 엄마가 보내주는 돈이 가계에 보탬이 되는 것과 별개로, 많은 연구들이 충분한 돌봄을 받고 자라지 못하는 제3세계 아이들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또한 엄마의 자리를 대신하는 역할은 언니, 이모, 할머니 등이 제공하고 있다는 점을 언급한다. 즉, 돌봄의 역할은 여성의 몫으로 여전히 남아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우리들도 이제 제3세계의 ‘남겨진 아이들’에 대해서 생각해봐야 하는 시점이다.

글 | 김희강 (정경대 교수‧행정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