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로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도 불의에 굴하지 않겠습니다.”
  은행열매 떨어져 나온 자리마다 청년들의 외침이 싹 튼 오후의 대학로. 12일, ‘전국 대학생 시국대회’에서 발언대에 오른 오규민 한양대학교 학생회장은 풍우를 몰아치듯 추상같은 호령을 내뱉었다. 집회 참가자들은 분노의 외침을 함성과 박수로 뒤삶고 곱삶으며 집회 분위기를 한껏 데웠다.

  “바쁜 와중에 시간을 내서 길거리로 나온 학생들이 대견해서 얼굴이라도 보러 나왔어.”
  인도 옆 은행나무 밑에서 조용히 집회를 바라보던 김진국(58) 씨는 안도했다. 집회에서 울려 퍼진 분노의 외침은 김 씨에게는 희망의 노래 가락이었다. 김 씨는 “국가의 부패에 대해 대학생들이 분노하지 않으면 우리나라의 미래는 없다”며 “대학생의 침묵은 나라가 죽은 것과 다름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로에 산산히 스미는 청년과 시민의 분노를 따라 마로니에 공원 쪽으로 걸었다. 닭 목을 비틀고 있는 손을 표현한 조형물은 분노가 빚어 낸 한 송이의 꽃이었다. 개인 방송을 통해 집회 현장을 온라인으로 중계하던 한 시민은 “이 땅의 민주주의는 죽었다”며 카메라를 향해 연신 절망감을 토했다. 그 옆에는 마로니에 그늘 밑에서 어린아이 네 명이 ‘박근혜 퇴진’이라 쓰인 풍선을 들고 입을 벙싯벙싯 벌리며 놀이를 하고 있었다.

  “우리 대학생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부패의 고리를 타고 국정을 농단하고 있는 현재 시국을 바라볼 수만은 없다!”
  오후 1시 30분, 대학생 시국대회 현장으로 돌아왔을 때, 각 학교의 총학생회장이 단상에 올라와 시국선언문을 낭독하기 시작했다. ‘그대는 나라를 사랑하는가. 그러면 먼저 그대가 건전한 인격이 되라’는 도산 안창호 선생의 말씀이 적힌 비석 뒤에서 시민들은 시국선언문 낭독을 지켜봤다. 안창호 선생의 말씀이 눈가에 걸리자 닫았던 입을 벌린 시민들은 박수로 호응하며 청년들과 함께 구호를 외쳤다.

  ‘박근혜 정권 퇴진! 국가의 주인은 우리다!’라고 적힌 현수막을 내리며 시국대회도 막을 내렸다. 시청광장으로 향하는 ‘분노의 행진’을 앞두고 분위기가 다소 어수선해졌다. 그 와중에 한복을 입고 오방색 풍선을 들고 있던 시민이 눈에 띄었다. ‘행동하는 서울지역 청년모임 새바람’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초은(28) 씨였다. 김 씨는 “대통령과 최순실이 좋아하는 한복과 오방색 풍선을 들고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며 “청년과 나라의 미래를 위해 시위에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 씨는 박근혜 대통령의 가면을 쓰고 오방색 풍선을 든 채 시민들의 박수를 받으며 행진의 선두에 섰다.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서 조용히 흘리겠다’는 시민들은 시청광장으로 거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글 | 이명오 기자  myeong5@kunews.ac.kr
사진 | 김주성 기자 pe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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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6-07 14:55: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