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천 코끼리
인천국제공항과 인천항이 대한민국을 찾는 이들을 반겨주는 인천은 한국에서 가장 넓은 광역시입니다. 300만에 달하는 인구가 거주하는 인천은 서울과 함께 4대 프로스포츠 구단을 모두 보유하고 있는 둘뿐인 도시입니다. 야구의 SK 와이번스, 축구의 인천 유나이티드, 배구의 인천 대한항공 점보스와 함께 인천을 연고로 하는 농구 구단은 1996년 창단된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입니다.
실업팀 대우증권 실업 농구단이 프로로 전환하면서 시작된 엘리펀츠는 사실 인천에서 무려 10년간 경기를 갖지 못했습니다. 경기장 문제 때문에 부천실내체육관을 임시 홈구장으로 삼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한때 부천으로 연고 이전을 고려하기도 했지만, 빅마켓인 인천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엘리펀츠는 2006년 새로 지어진 인천삼산월드체육관으로 돌아오면서 인천과 부천의 팬들을 모두 아우르게 됩니다.
창단 초기 꾸준히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호성적을 기록한 엘리펀츠였지만, 이후 기복 심한 모습을 보이다 결국엔 하위권을 전전하게 됩니다. 선수 시절엔 ‘코트의 여우’로, 감독이 된 후엔 ‘만수’로 불리는 지략가 유재학 감독이 팀을 떠난 후 최악의 감독이자 최악의 단장이었던 박수교 감독, 최초의 외국인 감독이었으나 소통 부족만 드러냈던 제이 험프리스 감독 등이 팀을 이끌었기 때문입니다.


2. 돈이 원수다
엘리펀츠의 부진엔 근본적인 원인이 있었습니다. 바로 모기업이 안정적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대우그룹의 몰락 이후 엘리펀츠는 신세기통신과 SK그룹의 관리를 받게 됩니다. SK는 이미 서울 SK 나이츠를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규정상 1팀을 포기해야 했고 엘리펀츠가 그 대상이 됩니다. 해체 위기까지 몰렸던 엘리펀츠는 전자랜드의 인수로 간신히 한숨 돌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중견기업인 전자랜드의 사정상 재정 지원은 풍족할 수 없었고 당연히 화끈한 전력 보강도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전자랜드의 경영 악화로 인해 다시 해체설이 거론되기 시작합니다. 수익 창출이 쉽지 않은 프로스포츠 구단을 인수하고자 적극적으로 나서는 기업은 하나도 없습니다. 다행히 지원보조금을 받은 전자랜드가 운영을 계속하기로 하며 또 한 번 사라질 위기를 넘깁니다.
엘리펀츠는 혼란을 겪는 동안 여러 불명예스러운 기록들을 얻습니다. 역대 한 시즌 최다 패배 기록인 2005/06시즌 8승 46패, 역대 한 경기 4쿼터 최소 득점 기록인 2009/10시즌 2득점 등이 바로 그것입니다. ‘개그랜드’, ‘전자렌지’ 등 조롱 섞인 별명들을 얻으며 굴욕을 겪던 엘리펀츠였지만, 팬들은 설움과 아쉬움 속에서 똘똘 뭉치고 열성적인 응원으로 한결같이 엘리펀츠의 곁을 지킵니다.


3. 작은 거인과 용사들
부진의 끝을 달리던 2009/10시즌. 작은 키에서 비롯된 별명을 가진 남자가 감독대행으로 부임합니다. 그가 바로 ‘야마꼬’ 유도훈 감독입니다. 젊은 나이에도 안양 KGC인삼공사를 2년 연속 플레이오프에 진출시킨 바 있는 유도훈 감독은 팀 분위기를 추스릅니다. 정식감독이 된 후 맞은 첫 시즌인 2010/11시즌. 엘리펀츠는 유도훈 감독의 지휘로 팀 역사상 최고 성적인 2위를 기록하며 강호의 위치로 도약합니다.
유도훈 감독과 함께 엘리펀츠의 반전을 이끈 사나이는 문태종이었습니다. 미 공군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를 둔 그는 2010년 귀화혼혈선수 드래프트로 엘리펀츠에 합류합니다. 유럽 무대에서 명성을 떨치던 문태종은 강심장을 자랑하는 선수였습니다. 4쿼터만 되면 놀라운 슛을 성공시키는 그의 활약으로 엘리펀츠는 끝까지 방심할 수 없는 팀이 됩니다. 아쉽게도 귀화혼혈선수는 한 팀에서 3년 넘게 뛸 수 없다는 규정은 그와 이별할 수밖에 없도록 만듭니다.
문태종이 팀을 떠난 이후 엘리펀츠를 지탱한 이는 정영삼이었습니다. 2007년 4순위로 지명된 그는 신인임에도 국가대표에서 활약하며 많은 기대를 받았습니다. 안타깝게도 잦은 부상으로 아쉬운 모습을 보이던 그는 군 복무 이후 환골탈태합니다. 동료들의 지원을 정확한 슈팅으로 마무리하며 득점을 올리는 정영삼은 지금까지도 10년 넘게 엘리펀츠를 지키는 수호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4. 뜨거웠던 한해
유도훈 감독 부임 이후 꾸준히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했던 엘리펀츠는 2014/15시즌 초반 주춤합니다. 용병 선수들의 부진, 인천 아시안 게임으로 인한 홈 경기 연기 등의 이유로 무려 9연패에 빠지며 꼴찌로 추락한 것입니다. 이윽고 다시 반등하며 전반기를 5위로 마무리하며 경기력을 끌어올렸으나 후반기엔 기복 심한 모습이 계속됩니다. 다행히 연승과 연패를 반복한 끝에 6위를 기록하며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합니다.
6강 플레이오프에서 마주한 상대는 정규 시즌 3위인 나이츠였습니다. 모기업으로 연결된 인연을 가졌던 나이츠는 KBL에서 손꼽는 인기 구단이었습니다. 나이츠엔 현역 시절 3점슛의 달인이었던 문경은 감독의 지휘 아래 엄청난 속도를 자랑하는 국가대표 가드 김선형, KBL 최장수 및 최다득점 용병인 애런 헤인즈, 살아있는 전설 주희정 등이 활약하고 있었습니다. 비록 후반기 부진에도 나이츠의 패배를 점치는 이는 드물었습니다.
하지만 엘리펀츠는 탄탄한 조직력을 과시하며 좋은 경기력을 선보입니다. 용병 선수임에도 주장을 맡을 정도로 훌륭한 리더쉽의 소유자 리카르도 포웰, 단단한 수비와 정확한 3점슛을 겸비한 차바위 등의 활약이 더해지면서 3연승으로 4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것입니다. 비록 원주 DB 프로미에게 패하며 시즌을 마감했지만, 마지막 5차전까지 포기하지 않고 승부를 이어간 엘리펀츠의 모습은 박수받기에 모자람이 없었습니다.


5. 최고의 자리에 도전장을 던지다
2018/19시즌은 엘리펀츠 역사상 가장 빛났던 시즌이었습니다. 탄력 넘치는 운동능력을 선보인 기디 팟츠, 뛰어난 피지컬에 BQ를 탑재하기 시작한 정효근, 고려대 출신인 강상재와 김낙현 등의 활약에 힘입어 정규 시즌 2위를 차지한 것입니다. 4강 플레이오프에 직행한 나이츠는 유도훈 감독이 정식으로 부임한 2010/11시즌 이후 최고 성적을 거둔 김에 숙원인 우승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합니다.
4강에서 마주친 상대는 창원 LG 세이커스. 최근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화제가 된 현주엽 감독이 이끄는 세이커스엔 김시래, 강병현, 조성민, 김종규 등 국가대표에도 자주 뽑히는 선수들이 즐비했습니다. 거기에 KBL 최초 1경기 40득점 30리바운드를 기록한 제임스 메이스까지 보유한 세이커스는 쉽지 않은 상대였습니다. 하지만 시즌 중 합류한 찰스 로드의 활약으로 나이츠는 가볍게 3연승을 거두고 팀 역사상 첫 챔피언 결정전에 진출합니다.
가장 높은 자리로 가기 위해 마지막으로 상대할 구단은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였습니다. 과거 엘리펀츠 소속이었던 유재학 감독과 문태종, 역대 최고의 가드 중 하나인 양동근, 최초의 귀화 선수이자 국가대표 에이스인 라건아 등은 수차례 우승 반지를 낀 베테랑들이었습니다. 젊은 패기를 앞세운 엘리펀츠는 매 경기 접전을 펼쳤지만 결국 경험 부족이라는 메꿀 수 없는 약점으로 1승 4패에 그치며 아쉬운 마무리를 합니다.


6. 후일담 및 근황
엘리펀츠는 2019/20시즌을 앞두고 일어난 정병국 선수의 공연음란행위에 이은 은퇴로 어수선한 시작을 하게 됩니다. 어처구니없는 소란을 뒤로하고 엘리펀츠는 전년도 피버스에서 활약한 섀넌 쇼터, 구단을 위해 부상자인 자신을 스스로 방출 요청했었던 머피 할로웨이 등을 영입하며 심기일전합니다. 두 용병의 활약과 한층 더 발전한 국내 선수들의 활약으로 현재 엘리펀츠는 리그 2위를 달리며 순항하고 있습니다.

-----------------------------------------------------------------------------

P.S.
이번 업로드에 너무나 많은 시간을 소모한 점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갑작스러운 일정들이 연달아 생겼지만 그만큼 더 열심히 글을 썼어야 했다고 스스로 반성하고 있습니다. 다음 글은 아무쪼록 늦지 않게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뉴올리언스 세인츠의 이야기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기대해주세요!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19 02:11:17: